능력은 貧富 초월하는 것
	2004-09-20
능력은 貧富 초월하는 것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2001년도 평가 결과, 초·중·고교의 학교 간 학력 격차가 큰 것으로 드러나면서 지난 30년에 걸쳐 시행되어온 교육 평준화 정책이 근본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교육부가 2008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고교 간 학력격차 반영을 금지한다고 한 것과 맞물리면서 그 파장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 교육 평준화는 원래 지역이나 빈부의 차이에 무관하게 기본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핵심 요체는 빈부격차가 교육을 통해서 세습되는 것을 막겠다는 데 있는 것이라 본다. 교육부가 대입 전형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여금 입학, 필기 고사, 고교 서열화 등 세 가지 요소만은 금지해온 것도 바로 빈부 격차가 대학 진학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준화 정책이 그러한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이 명백해졌다. 오히려 부유한 지역에서 명문대에 더 많이 진학시키게 되었다는 통계가 보고됐고, 초·중·고 학교 간 격차마저도 심화됐음이 확인됐다. 더욱이, 전체적인 학력 저하를 초래했고, 우수 학생의 능력 발전 기회를 억제했다. 비록 국민은 이번에 알게 됐지만 교육부 관계자들은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다만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엄청난 일이라서 그냥 덮어두었을 것이다. 평준화 정책 실패의 요인은 그 가설의 오류에 있었다고 본다. 초·중·고 교육에서 경쟁 요소를 배제하면 빈부의 격차가 교육을 통해 세습되는 것을 차단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잘못이었다. 원래 사람에게 주어진 소질이나 능력은 재물이나 빈부의 격차를 초월하는 것이다. 소질은 연꽃과 같아서 진흙 속에서도 찬란히 꽃필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가난한 가정에서 출발했으나 성장과정에서 부지런히 노력해 소질을 발휘해서 성공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교육 평준화는 교육에서 경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이러한 능력 발휘의 기회를 봉쇄하게 된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에서의 경제 활동은 자본과 지식이 두 개의 축을 이룬다. 여기서 ‘자본’이 물려받는 요소를 대변한다면, ‘지식’은 기술·경영·노동 등 학습을 통해 개발하는 요소를 통칭한다. 자본을 통한 참여가 불가능한 가난한 사람도 교육을 통해 지식 요소를 습득하게 되면 대등한 경제활동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현행과 같은 평준화 교육은 능력 계발 기회를 박탈하여, 자본이 없는 사람은 경제 활동의 주역으로 부상할 기회를 차단하게 된다. 지금 새삼 평준화 정책을 갖고 현재의 교육부 관리들을 추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추궁하려면 30년 전에 이를 입안한 관리들이 그 대상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실험은 끝났다. 명백한 실책임이 밝혀진 이상, 주저 없이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실패를 교훈 삼아 백년대계를 새로 수립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새롭게 세울 교육 정책은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하여 스스로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하고, 사교육비에 의한 지엽적 수완으로는 당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부자가 돈을 못 쓰게 막는 것보다는, 돈을 아무리 써도 스스로 땀 흘리지 않고는 안 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자율적 발전을 구속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기 성장과정에서 한번쯤 실패를 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2의 기회’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병기 (서울대 교수·정보통신 한국공학교육학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4. 9.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