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수도이전’ 실패의 역사
	2004-08-12
‘졸속 수도이전’ 실패의 역사 신행정수도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사실상의 수도이전 최종 입지가 확정, 발표됐다. 수도이전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국민적 합의도 없이 밀어붙이면서 최종 입지를 성급하게 발표함으로써 수도이전 자체를 기정 사실화하고 국민적 반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정부의 명운을 걸겠다는 오기와 만용의 극치로 보인다. 왜 수도를 옮겨야 하는가 하는 목적은 간데없고, 최종 입지 결정이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합리화시켜 주는 것 같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顚倒) 현상이 나타난다. 통일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또한 수도권 2300만명의 안보 공백은 어떻게 메울 것인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충청권의 표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특히, 수도이전 반대에 대한 국회 청원과 헌법소원이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몇 개월 만에 짜놓은 각본에 따른 평가작업과 공청회를 가장한 대 국민 홍보 과정을 거쳐 벼랑 끝 작전으로 내놓은 최종 입지 발표는 또 다른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만 하더라도 수도이전 방침을 결정하고 후보지 선정 작업만 해도 7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점수까지 공개한 3개 후보지만 선정했을 뿐 최종 후보지는 물론 수도이전 자체를 사실상 포기한 채 국민의 관심을 떠나고 말았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서두르는지 이해가 안 된다. 천년의 도읍지를 만드는 데 몇 년도 아닌 몇 개월 만에 후닥닥 해치워 버린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 수도이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과 최종 입지 결정에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볼 때 시간을 버는 일임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더욱이 이번에 발표된 장기·연기지역은 이미 600여년 전, 한 나라의 수도 입지로서 부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건국을 하고 새로운 수도 입지를 물색할 때 권중화라는 지관이 계룡산 일대를 하늘이 내려준 1000년의 도읍지라는 간언으로 천도 공사를 시작한 바 있다. 10개월여 천도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성계를 도와 조선조를 건국한 공신 중의 한 사람인 하륜이 계룡산천도불가론을 제기했다. 하륜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수도는 나라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 지역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고, 계룡산 일대는 산은 서북방에서 내려오고 물은 동남방으로 흘러가니 ‘수파장생(水破長生) 쇠패입지(衰敗立至)’의 땅이기 때문에 망국의 입지라고 했다. 즉, 물의 흐름이 나라가 오래 가지 못할 형국이며 쇠퇴와 패망이 곧 닥치는 땅이라는 것이었다. 태조는 하륜의 말을 듣고 천도 작업을 중단시켰고, 새로 찾은 곳이 오늘의 서울이다. 하륜처럼 충언을 아끼지 않는 신하도 훌륭하지만 이성계 같은 남의 말을 듣는 왕도 높이 보인다. 우리나라 역사를 들여다보면 실패한 천도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어간 사례가 있다. 궁예는 송악에서 건국했으나 철원으로 천도하여 태봉국으로 국호를 바꿨지만 철원 천도에 따른 무리한 공사와 아집으로 12년간 버티다가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 묘청의 서경(西京) 천도 역시 비운의 종말을 맞았다. 묘청은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면 주변 국가들을 복속시킬 수 있고 대제국을 이룰 수 있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천도를 주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스스로 대위국을 세우고 칭제를 했다. 그러나 중앙권력에 의해 진압당하는 이른바 ‘묘청의 난’으로 천도는 막을 내렸다. 섣부른 수도이전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돼 있다. 수도이전은 명분이 있고, 때가 있고, 국민들의 합의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은 역사적 진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8. 1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