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보고 누락'의 교훈
	2004-07-28
'NLL보고 누락'의 교훈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야기된 NLL 보고 누락 사건은 우리 군과 안보태세에 너무나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와 군은 안보태세와 관련하여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북의 도발로 야기된 사건을 호도하여 우리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일차적인 책임은 남북 장성급회담의 합의 사항을 어기고 NLL을 무력화하려 한 북한에 있다. 남북한 사이에 합의된 핫라인을 북한이 교란 수단으로 악용함으로써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NLL을 넘어선 북한 함정이 핫라인을 통한 우리의 경고를 받고 다시 북상할 경우 NLL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기에 북한측이 우리의 호출을 무시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대북 정책과 관련된 정부의 정치적 결정이 군에 너무나 큰 부담이 되었다는 사실을 청와대는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경고사격을 못 하도록 할 것을 우려하고 군사적 과잉반응에 대한 여론의 우려 때문에 고의로 보고를 누락시켰다는 군의 주장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현장 상황 발생시 지휘관은 ‘교전수칙’에 따라서 대응하고 전투상황을 빠짐없이 지휘계통을 밟아 최상부까지 보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만 상황 악화 여부에 따라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결정이 적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보고 누락은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이번 보고 누락에 고의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은 문민 우위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문민 우위의 원칙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 원칙은 군이 스스로 군사력 사용에서 정치적 논리를 세울 수 없고, 군통수권자인 민간인 대통령의 지시와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군이 군사 외적인 요인에 대한 고려에서 ‘교전수칙’과 작전 조치를 어긴다면 그것은 국가안보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그렇다고 문민 우위의 원칙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일일이 군사작전에 간섭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트남전쟁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일일이 군사작전을 지휘했지만, 그것은 미국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의 초기 대응도 적절하지 못했다. 만약 작전과 보고 체계에 문제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것이 아니라 조용히 국방장관에게 조사를 지시해서 결과를 보고받고 처리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만들고 말았다. 그 이후 정부의 대응은 적절치 못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혹은 국방부의 누군가는 나서서 익명을 전제로 즉시 배경설명을 했어야 했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이 결정되었을 때 미 국방성은 즉시 익명의 고위 관리를 통해 장시간에 걸쳐 배경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기는커녕 북한의 도발에 의해 발생한 사건을 두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어처구니없는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박승춘 합참 정보본부장(중장)이 이번 상황의 일부를 언론에 유출한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의 NLL 침범으로 군 인재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북한의 의도에 우리가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계기로 내부 보고 체계를 철저하게 정비하고 공보 규정도 현실에 맞게 대폭 수정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교수·국제정치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7.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