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재개정’ 정치개혁 역행
	2004-07-21
‘선거법 재개정’ 정치개혁 역행 아마도 선거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개정된 법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1948년 3월 17일 국회의원선거법이 제정된 이래 수많은 선거법률이 개정과 폐지 및 새로운 제정을 겪었으며, 1994년 현행 공직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에만도 20여차례 개정됐다. 그러나 선거법에 대한 개정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난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정치개혁을 위한 입법으로 선거법 등을 개정한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의 재개정 주장이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현재 선거법 개정의 방향과 관련해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선거운동 및 선거 비용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전혀 새롭지도 않고, 오히려 정치개혁에 역행한다고 볼 수 있는 주장들이 이제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선거운동에 대한 제한이 과도하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지난 총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공정한 선거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선거법이 엄격하고, 선관위의 감독이 엄정했기 때문에 선거 부정이 줄어든 것으로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지난 총선은 탄핵정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후보자 개개인의 선거운동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힘든 형편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단지 지난 총선만을 놓고 선거운동에 대한 제한이 과도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선거비용에 대한 제한을 완화한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금권선거를 배격하고 후보자 및 정당의 능력과 정책대안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고자 하는 데 역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법정 선거비용을 제대로 지키는 예가 드물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선거비용에 대한 제한을 완화한다는 것은 결국 그동안의 불법을 정당화시키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 정상적인 문제 해결의 방향은 오히려 선거공영제의 실질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선거공영제를 통해 선거운동과 관련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후보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선거운동의 질적·양적 차이를 줄이고, 동시에 선거비용의 필요성 자체를 해소시킨다면, 문제는 오히려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고의 부담이 문제된다면, 정당에 대한 국고 보조를 일부 전용하는 것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며, 후보자의 난립이 우려된다면 기탁금제도를 강화시키는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선거공영제를 실질화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에 있는 것이지, 현실적 조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통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정당하지 않다. 예컨대 90%의 지지를 받은 A당 후보와 5%의 지지를 받은 B당 후보가 똑같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과연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국민들이 B당 후보에게 5%의 지지만 보낸 것은 사실상 낙선을 요구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유신 당시에 그 문제점을 경험한 바 있으며, 일본에서조차 포기된 중·대선거구제를 무리하게 도입할 경우, 결국 정당간의 나눠먹기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선거법 개정 주장이 왜 하필이면 열린우리당이 여당이 된 직후에 나오고 있는가? 마치 특검제를 찬성하던 야당이 여당이 된 후에는 입장이 바뀌듯이 정치개혁 입법에 대한 주장까지도 야당일 때와 여당일 때 입장이 달라지게 된다면, 그런 정당을 국민은 어떤 시선으로 볼까? 굳이 오얏나무 밑에 찾아가서 갓끈을 고쳐 맨다면 그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0 출처 - 문화일보 2004. 7. 2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