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시스템 어떻게 바꿀까
	2004-07-20
수사시스템 어떻게 바꿀까 엽기적인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괴롭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가. 비난의 화살이 온통 경찰에 쏟아진다. 이번에 또다시 희대의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일어났다. 피해자 수부터 기가 막힌다. 당장 경찰의 치안 무능력과 수사력 허점이 도마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발생한 연쇄살인과 비슷한 사건이 당장 또 일어난다고 해도, 아니 지금 어디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현재의 수사시스템으로는 뾰족한 대책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왜? 이번 사건과 같은 범죄는 일반적인 보통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찰 수사시스템으로는 이러한 엽기적이고 예외적인 범죄에 대한 대처가 힘들다. 일반적인 살인사건은 죽은 피해자가 범인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주변을 살피다 보면 용의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 연쇄살인같이 용의자 추정이 어려운 사건은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건으로 국내 살인범죄의 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동기가 불분명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이 늘고 있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가족.지역사회 같은 비공식적인 사회통제를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11명의 여성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갔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때 일본 경찰이 살인범죄 검거율 90% 이상을 자랑하다가 경기침체와 사회구조 변화 등의 이유로 지금 60% 이하로 떨어진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경찰은 이미 밝혀진 여러 살인사건에서도 연쇄살인의 코드를 밝혀내지 못했다. 항상 문제는 '왜?'보다는 '어떻게?'에 있는 것 같다. 이런 범죄에 대처할 수 있도록 수사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정녕 경찰의 근본적인 임무를 범죄수사라고 주장하려면 범죄수사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경찰의 수사인력이 전체 경찰인력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늘려야 한다. '미아 찾기'부터 시작해 경찰이 이것저것 다하다 보니까, 막상 범죄수사에 대한 집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사의 과학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난 10여년간 경찰은 줄곧 과학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과학수사과'란 독립 부서도 생겼다. 하지만 과학수사는 부서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효율적인 투자와 운영이 필요하다. 연쇄살인과 같은 범죄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범죄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연쇄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ViCAP(Violent Criminal Apprehension Program)'과 같은 컴퓨터 범죄분석 프로그램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도 그동안 일부 수사관들이 개인적으로 범죄 프로파일링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경찰청 차원의 구체적인 지원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학계의 전문가들과 협력해 엽기적 범죄를 해결하고자 범죄심리분석자문위원회라는 것도 만들었다. 하지만 범죄심리분석자문위원회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 유명무실해졌다. 이번 연쇄살인같이 동기가 불분명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경우 사실 경찰만 힘쓰고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그토록 협력방범, 지역사회 경찰활동을 강조하는 이유도 경찰의 노력만으로는 범죄예방과 수사에 한계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결코 경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당장 고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부터 수사시스템을 바꿔 나가는 것. 경찰 수사시스템 혁신의 출발점이다. 이창무 (한남대 교수.경찰행정학) 출처 - 중앙일보 2004. 7.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