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친인척 지분공개' 부적절
2004-07-09
'대주주 친인척 지분공개' 부적절 지난해 10월 공정위가 시장개혁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부터 우리 경제가 무언가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리병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해 가야 할 자본시장이 이 로드맵 발표 이후 보이는 손인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형성되는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시장이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미 애덤 스미스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본이 사용될 때만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경제적 질서가 형성된다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장 개혁이 매우 위험한 모험을 강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최근 공정위는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51개 기업집단 대주주 친인척의 지분 현황을 1~3촌, 4~6촌 등 촌수별로 묶어 7월중 공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 이유는 일반인들에게 대기업집단의 소유 구조를 보다 상세히 공개하여 투자 판단을 돕고 해당 기업들이 스스로 소유지배 구조를 개선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다. 우선, 대주주의 집안 내력 공개가 투자자들의 판단에 어떠한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대주주의 집안 내력을 공개한다고 해서 과연 소유지배 구조가 개선될까? 또한, 공정위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대주주의 친인척 가운데는 경영자로서가 아닌, 단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투자하고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투자자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해당자들이 공직자도 아닐 경우 이들은 시장에 투자한 것 자체만으로 사회적 책임을 강요당할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공정위가 현재 추진중인 대주주 친인척 지분 현황 공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커다란 우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시장경제 질서 유지를 담당하고 있는 감독 기관으로서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공개하여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치적 효과를 누리기 위해 위법한 방법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투자 결정은 당해 기업의 영업성과와 경영자의 능력 등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것이지, 대주주의 가계 상황에 따라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투자 여부를 감정적으로 결정토록 유인할 위험성이 있다. 셋째, 정보공개 대상자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동기를 억제함으로써 자본시장에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투자를 촉진시켜 고용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청년 실업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공개정책은 우리의 경제 현실을 외면한 부적절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공정위는 현재 금감위가 담당하고 있는 사업보고서 등의 공시규제 업무와 중복된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중복 규제를 가할 가능성이 짙다. 더욱이 이러한 중복 규제는 행정 부처간의 업무상 충돌로 인한 국정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 또한 크다. 다섯째, 어느 국가도 자국 자본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대주주 친인척의 주식 소유 현황을 공개하여 해당 기업들을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표적으로 만들고 있지 않다. 더욱이 이번 정보 공개의 대상은 외국자본가가 아닌 국내 자본가들임을 고려할 때, 이는 역차별임과 동시에 외국 자본에 적대적 M&A를 도와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예로부터 투자자는 당해 기업의 경영성과와 경영진의 능력을 보고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이지, 대주주의 집안을 보고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학생이 수강 신청 여부를 결정할 때 해당 교과목 교수의 경력과 강의계획서 내용 외에도 당해 교수의 가족관계도 공개하여 이를 참고하도록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할 것이다. 부디 국제적 정합성에 부합하고, 시장 친화적인 공정위의 경제정책을 기대해 본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7. 9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