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회 매도하기
	2004-06-16
언론학회 매도하기 한국언론학회가 방송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대통령탄핵관련 TV방송 내용분석’ 보고서에 대한 비판과 폄훼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여러 언론단체와 시민단체가 연대해서 이 보고서를 편파적이라고 공격하고 일부 인사는 심지어 ‘수구집단의 음모적 산물’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한국 언론학계를 대표하는 언론학회가 졸지에 음모적 집단으로 매도되고,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성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연구자들의 인격이 매도된다면 앞으로 누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연구에 참여하려 들겠는가. 언론학회 보고서의 핵심적 결론은 이렇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둘러싼 논란은 방송보도의 공정성 규범이 적용되어야 할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데, 분석 결과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결론에 대한 반대자들의 논리는 탄핵사태가 본질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 ‘의회 쿠데타’이기 때문에 탄핵반대라는 여론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오히려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결국 논란의 일차적 핵심은 탄핵사태라는 이슈의 성격인데, 탄핵소추안 가결을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인 비판과 저주가 허용되는 ‘일탈영역’에 속하는 사건으로 보느냐이다. 보고서는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가 적법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근거로 탄핵사태가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다. 헌재의 판결은 여당과 탄핵반대 세력의 ‘의회 쿠데타’ 논리가 과장된 것임을 헌재의 권위로 확인해 준 것이기에 보고서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탄핵사태에 대한 실질적인 국민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총선 결과도 탄핵 반대세력과 찬성세력의 의석분포가 55% 대 45% 정도로 나타나, 탄핵사태를 쿠데타와 같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일탈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언론학회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의 두 번째 핵심은 공정성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것이다. 보고서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탄핵안 가결 당시 탄핵반대의 여론이 찬성보다 7대3 내지는 8대2 정도로 우세했는데 이런 여론의 지지도가 보도에 당연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언론학회 보고서가 ‘산술적 균형’이라는 낡은 잣대로 공정성을 기계적으로 재단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보고서가 균형의 개념을 단순히 산술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질적인 측면까지 포함해 포괄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보고서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일부 프로그램들은 7대3 내지는 8대2라는 최소한의 비율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그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공영방송의 대명사인 영국 BBC를 거론하며 방송의 공정성은 산술적 균형이 아니며 여론의 지지도에 따라 보도의 양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BBC가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적정한 불편부당성’이란 개념이 기계적 균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여론을 도외시하라는 것도 아니다. 이 개념의 핵심은 정치적 논란이 있는 문제를 보도할 때 서로 다른 주요 견해들을 소홀함이 없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고심 끝에 연구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학문적으로 뚜렷한 성과를 거둔 그들의 연구를 정략적 이유로 매도하거나 오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양승목 (서울대 언론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6. 1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