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탄핵보도가 남긴 것
	2004-06-14
TV 탄핵보도가 남긴 것 방송 '主唱저널리즘'의 위험 위력 큰 만큼 책임도 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견제받을 수 있다는 것과,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라고 배워왔던 다수결의 원칙이 다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와 함께 언론보도가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를 실감케 만들었다. 탄핵을 시도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의 원색적 대결 모습을 여과 없이 중계함으로써, 탄핵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탄핵 진행과정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켰던 것이다. 이는 TV라고 하는 매체가 감성적이고 즉자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0일 언론학회는 대통령 탄핵 관련 방송보도 96시간 분량을 정밀 분석한 결과, “느슨히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평가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방송사들의 소위 ‘주창(主唱) 저널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단순히 탄핵보도에 있어 편파적이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탄핵 관련 방송 보도는 이번 언론학회 보고서가 밝힌 바와 같이 엄격한 산술적 편향성 수준이 아니라, 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정성 책무조차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의 대통령 탄핵 관련 보도는 방송에 요구되는 신중함은 고사하고 국민들보다 더욱 분노한 모습까지 드러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마치 탄핵에 분노하지 않으면 탄핵을 주도한 사람들과 똑같은 몹쓸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은 망령에 싸여 있었다. 방송의 위력이 그처럼 엄청나다는 것은, 곧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막중한 힘을 행사하는 만큼 책임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과 같이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쟁점들을 보도함에 있어서는 더욱더 강한 책임의식이 요구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3월의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방송사들의 보도태도는 논란이 될 만한 소지가 많았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격분하고 있고, 어떤 것이 정의인지에 대한 판단이 분명한 상황에서 ‘공정성’이란 덕목은 너무나 작위적이고 위선적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탄핵에 분노하는 여러 목소리를 제공해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역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언론은 여론의 방향을 직접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들을 제공해주는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때 언론사 혹은 개별 언론인들은 주관적 판단이나 규범적 평가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의무를 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대통령 탄핵과 같이 모든 국민이 분개하고 있는 사건이라고 해도, 언론사 특히 강한 공정성의 책무를 지고 있는 방송사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탄핵에 분노하는 것이 사회정의 차원에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섣불리 진리를 단정하는 도그마에 빠질 수 있거나, 아니면 방송이 시청자들을 계도해야 한다는 낡은 계몽주의 언론관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중요한 사안일수록 언론은 더욱 신중해야 하고, 갈등이 첨예할수록 이를 조정하는 조정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언론학회의 평가 결과는, 언론사 특히 여론 독점력이 강한 방송사들이 좀더 신중 하라는 엄중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 신방과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6.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