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보 새판 짜자
	2004-06-03
한반도 안보 새판 짜자 주한미군 감축 릴레이 제언 아직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안보문제와 관련해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한국전쟁의 비극과 함께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또다시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따라서 최근 미국정부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PR)의 일환으로 주한미군을 이라크에 차출한다든가 주한미군 감축 계획설에 대해 우리 국민은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불안감의 표현은 정부 당국의 책임문제로 쏠리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미감정이나 ‘자주국방’의 의지 표현, 또는 소극적인 이라크 파병 결정 때문에 한·미 동맹관계가 균열된 결과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주한미군이 머물던 1950년대와 2000년대인 오늘날의 국제정세나 미국의 세계전략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1950년대 주한미군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남한에 군사·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성격이었던 반면 2000년대 주한미군의 역할은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보호하는 미사일방어계획(MD)이나 자유무역주의를 통해 무역장벽을 제거하려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미국을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구원해준 혈맹관계의 의리로 생각하지만 한·미관계의 현실은 미국 무기 구매와 기술이전,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 한국 상품의 덤핑 판정과 슈퍼 301조 적용 등 협상과 흥정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남북한 사이의 전쟁가능성도 바뀌고 있다. 1950∼1960년대만 하더라도 북한은 소련·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고 4대 군사노선으로 전 국토와 전 주민이 군사화돼 있었다. 그러나 현재 소련은 붕괴되고 중국은 개혁·개방에 이어 한국과 수교를 맺음에 따라 일방적으로 북한을 지원해 전쟁을 촉발시킬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특히 한국과 주한미군의 군사력이 성장해 1991년 이후부터는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론까지 대두될 정도다. 이미 1999년 대북정책 조정관이었던 페리의 보고서나 2000년 북한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자서전은 북한이 오히려 한국으로부터의 선제공격을 두려워하며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남북한의 군사능력이 더 이상 승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며 전쟁은 상호간에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군이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거나 주한미군을 차출해 이라크에 파병하는 문제는 미국의 전략과 전술상의 변화에서 초래되는 것이지 우리 정부의 정책이나 발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현재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과 현대적인 군사능력의 측면에서 볼 때 더 이상 3만7000명이나 되는 주한미군을 한곳에 묶어 둘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전개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국내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더 이상 국내 차출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이라크로의 이동이 결정됐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안보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현재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 남북한 통일이 급선무이긴 하지만 통일 이후의 안보전략을 세우고 중국·러시아·일본·미국의 4강대국 속에서 평화와 안보를 지켜낼 방도를 찾아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4강대국과 다자 평화협력체제로 영토와 주권을 보장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혹자는 장차 예상되는 적성국가로 일본을 꼽고 독도문제와 일본의 군사화가 염려되기 때문에 일본과 친한 미국보다는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대국과의 동맹은 종속되기 쉽다는 점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나을 수 있고 이는 현재 상태를 조정하면 가능할 것이다. 역시 한·미관계는 배척될 대상이 아니라 개선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권오윤 (동국대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4. 6.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