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거래 공정위 소관 아니다
2004-05-24
내부거래 공정위 소관 아니다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다른 나라 경쟁법과 매우 다르다. 재벌 문제를 시장경 쟁 문제로 보고 있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벌을 거론할 때 의례적으로 `독점` 재벌이라고 말한다. 재벌 계열사들이 많은 산업을 독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행동이 경쟁질서를 구조적으로 파괴하 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벌 계열사들의 규모가 큰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세계화의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 기업들이 맞서야 하는 외국 기업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사정이야 어쨌든 우리에게 재벌 문제는 처음부터 독과점 문제였다. 이러한 사회 인식은 재벌 정책을 공정거래 정책의 틀 속으로 몰아갔다. 재벌 계열사끼리 실물 또는 금융상품을 거래하면서 그 대금을 실제 가치와 다 르게 주고 받으면 부당 내부거래가 발생한다. 공정거래법은 혜택을 제공한 계 열사 A에 부당 내부거래 책임을 물어 과징금을 부과해 처벌한다. 혜택받은 계 열사 B의 경쟁력을 부당하게 강화해 공정한 경쟁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이 이유 다. 예컨대 계열사 A에서 부품을 부당하게 싼 값에 구입함으로써 제품가격을 인하 한 B사의 경쟁력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시장 경쟁질서에 직결된 사 항은 A사의 가격차별 행위와 B사의 가격 인하다. A사가 자신과 같은 계열사인 B사에만 싸게 파는 행동은 분명히 다른 고객을 차별한다. 그러나 이 행동은 결 과적으로 A사가 B사에도 같은 값에 팔면서 그 차액만큼을 별도로 증여한 것과 같다. 이렇게 했다면 증여는 문제가 되겠으나 가격 차별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A사와 B사가 한 총수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만큼 이에 따른 문제는 없 다. 가격을 차별하더라도 실제 부품 구매량은 가격 차별없이 차액을 증여하는 경우와 같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차액 증여는 그 자체로는 시장 경쟁의 공정성과 무관하다. 문제는 B사의 가격 인하다. B사의 가격 인하는 경쟁 사업자의 퇴출을 겨냥하는 약탈가격 행위일 때에 한해 반경쟁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가격 인하에 따른 손실을 부당 내부거 래로 충당하더라도 약탈가격 행위가 아닌 한 이 가격 인하를 반경쟁적이라고 판정하지 않는다. 계열사 A는 부당하게 싼 값에 부품을 공급하거나 B사의 금융자산을 부당하게 고가로 매입해 줌으로써 자신의 소득을 계열사 B에 이전시킨다. 그러나 그 결 과 나타나는 계열사 B의 행동이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지는 자금조달 과정과는 별개 기준으로 판단한다. 부당하게 조달한 자금으로 기술 개발에 성공해 경쟁력을 강화했다고 하자. 기 술개발로 경쟁력을 강화한 것을 두고 반경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자 금조달 방식이 부당할 따름이다. 물론 계열사 B의 경쟁 사업자가 어느 재벌 그 룹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기업이라면 같은 계열사 A의 도움을 받는 B보다 불리 하므로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돈 끌어오는 재주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경쟁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주장과 같다. 결국 부당 내부거래 문제는 부당한 자금조달 방식의 문제일 뿐 시장 경쟁 저해 문제는 아니다. 경쟁 정책 차원에서 다룰 성질이 아닌 것이다. 계열사 B는 경 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부당 내부거래 아닌 정당한 경로로 A에서 빌릴 수도 있다. 부당 내부거래는 A의 자금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 이득을 B가 누리도록 만든다. 결국 부당 내부거래는 투자수익을 누리는 주체를 A 아닌 B로 바꿀 뿐이다. 같 은 계열사인데 A는 비용을 대고 B는 이익을 누리도록 조치하는 까닭은 B가 이 익을 누려야 총수가 얻는 몫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부당 내부거래는 이미 실제 사례에서도 많이 드러났듯이 재벌총수의 빼돌림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당 내부거래로 피해를 보는 집단은 돈만 대는 A사의 일반주주들뿐 이다. 그런데도 현행 공정거래법은 A사에 부당 내부거래 책임을 물어 과징금을 부과한다. A사의 일반주주들은 총수의 소득 빼돌림으로 1차 손해를 본 뒤에 정 부의 과징금으로 한 번 더 손해를 본다. 일이 이렇게 된 까닭은 부당 내부거래를 반경쟁적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부 당 내부거래가 아무리 부당하더라도 이것을 징계하는 정책이 현재처럼 부당하 면 그 결과는 더욱 부당해진다. 부당 내부거래는 공정거래 문제가 아니고 금융 거래 문제이자 기업지배구조 문제다. 공정거래법에서 다룰 일이 아니라 증권거 래법에서 다루어야 할 일이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처 - 매일경제 2004. 5. 24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