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이라크로 왜 빼나
	2004-05-19
주한미군 이라크로 왜 빼나 미국이 동두천과 전방 일대에 주둔 중인 주한미군 제2사단 가운데 1개 여단 병력을 올 여름 이라크에 파견할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과 파장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이라크로 차출될 주한미군 숫자는 보병 1개 여단과 약간의 지원병력을 합쳐 4000명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규모는 총 3만7000명 규모의 주한미군 중 10.8%에 지나지 않으나, 전방의 대북 위협 억지임무를 실질적으로 맡아 온 주력부대의 절반이 빠져나간다는 점에서 보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커다란 결정이 왜, 어떻게 해서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라크의 치안상황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한국의 평화재건군을 마냥 기다리느니 주한미군의 정예부대를 빼내 필요한 지역에 보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시위하는 것일까. 또 이들이 이라크에서 작전을 마치면 곧바로 본토로 귀환케 하여 차제에 주한미군 감축의 신호탄을 올리려는 것일까. 하지만 한미 양국 간의 불신구도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불만과 응징의 연쇄작용으로 파악하는 해석은 추론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미국의 이번 결정은 준전시지역으로 남아 있는 한국으로부터 병력을 충당해야 할 정도로 이라크 사태가 급박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14개월이 넘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3, 4사단 병력을 교체해 줘야 하는 것도 관건이다. 연합군의 철수 움직임이 잇따르고 이라크 포로 학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는 때에 당분간 미국 자신이 스스로의 역량에 의해 대처능력을 구비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아니고서야 북한 핵 사태의 와중에 그러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한미군의 이라크 이동은 그동안 꾸준히 논의돼 오던 한미 동맹의 변화 방향을 실행으로써 구체화하는 최초의 사례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9·11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일찌감치 해외주둔 미군기지의 조정계획을 발표해 왔다. 양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했던 재래식 군사배치 개념으로부터 테러와 대량파괴무기(WMD)의 확산 등 예측불허의 다양한 위협요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도 신속한 대응태세를 갖추는 방향으로 질적 우위를 보강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한미 양국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대북 안보 대응 능력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주한미군 기지의 통폐합과 남하 이전 준비를 2006년까지 마무리하기로 약속해 둔 상태였던 것이다. 문제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실행이 이라크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연쇄작용으로 일어나게 되면서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배치는 감축을 불가피하게 동반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이제 확고해졌다. 그렇다면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할 대북 억지 기능을 어떻게 충족하고, 새로 맡게 될 동북아지역 안정관리 역할을 위해서는 한국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대비해야 한다. 또 주한미군의 조정 과정에서 미국도 응당한 투자와 후속조처를 꾀하게끔 치밀한 협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 안보상의 중요한 변화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정확한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일이다. 주변의 안보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이에 부합하는 안보태세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이며, 한미동맹은 어떻게 조정·발전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따라야 한다. 이라크 파병도, 한미 동맹의 미래지향적 변화도 모두 한국에 필요해서 결정한 일이다. 부작용이 염려되어 조심하느니 자신있게 추진하여 기대되는 성과를 극대화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4. 5. 1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