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가 모두 잘 사는 길
	2004-05-13
시장경제가 모두 잘 사는 길 4.15총선 이후 여당과 야당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당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대체로 열린우리당은 중도진보를, 한나라당은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닌 중간을 지향하되 열린우리당은 좀더 진보적인, 그리고 한나라당은 좀더 보수적인 노선을 띠겠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 범위 싸고 시각 차 이러한 현상은 인류역사의 이데올로기 진화과정을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나라의 장래를 보아서도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경쟁을 통해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철저히 패배한 지금도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공산사회로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정신나간 사람이다. 반면에 사회의 소외계층과 극심한 빈부격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완전 자유시장 경제로 가자고 하는 사람도 공산주의의 발생원인을 망각한 철없는 사람이다. 결국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는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문제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인간의 이기주의적 심성과 다양한 선호체계를 무시하고 국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공산주의 체제는 국제경쟁에서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기에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남는 선택은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일 수밖에 없다. 유럽 국가들에서 우파정당과 좌파정당이 번갈아 정권을 담당해 오고 있지만 양당 모두 시장경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다만 자유경쟁 시장경제라는 것이 자신의 노력과 능력 여하에 따라 잘 살 수 있다는 인센티브로 인해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소외되고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해 소득을 재분배하고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부의 개입 정도에서 보수와 진보가 나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선 개인의 자조노력.자유경쟁.성장을 더 중시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보수라면,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회적 소외계층의 이익을 더 중시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 진보다. 좀더 일반적으로 보수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보존하려는 태도를 지칭하고, 진보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태도를 지칭한다. 그런데 기존의 가치와 질서가 합리적이고 그 사회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때엔 문제가 없지만 기득권층의 이익만 지키려할 때엔 타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원한 진보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 중 어느 것이 그 사회를 위해 더 바람직한 태도인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인간의 심성상 약자를 옹호하려 하고 또 사회 전체적으로 항상 약자가 많기에 진보가 더 지지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나라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현재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든 보수든 국가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영원한 진보란 있을 수 없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사회가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라고 가정할 때, 경제학의 공공선택 이론은 어떤 사회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보수와 진보는 중간 지점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나친 보수와 진보는 대다수 사람의 지지를 못받게 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투표과정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그들은 보다 중도 쪽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수렴이 가능해질 때 우리 사회의 갈등도 완화되고 우리 경제도 선진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보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당과 야당이 중도진보와 중도보수를 지향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선 다행스러운 일인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5. 1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