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학대, 철저히 문책하라
	2004-05-12
포로학대, 철저히 문책하라 독재자의 방식 쓴 미국 多者주의로 리더십 회복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포로 학대 사진들은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폭로된 학대 행위들은 전쟁 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을 명백하게 위반했을 뿐 아니라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공포정치의 상징이었던 교도소에서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대의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 미군이 이러한 야만적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미국의 도덕성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이러한 상황은 패권국 미국의 리더십을 손상시킴으로써 향후 국제정치 및 경제 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협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테러범과 독재자와의 전쟁에서 그들과 똑같은 방식을 동원했다는 사실에 미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분노하는 것이다. 나아가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1월 바그다드지역 교도소에서 이뤄진 이라크 포로들 학대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접하고서도 적극 대처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이 처음 보고되었을 때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못한 럼즈펠드의 판단력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제 식구 감싸기식 행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냉전을 승리로 이끈 봉쇄전략을 추진했던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팻말을 놓아두고 대내외정책 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냉전 시기에 트루먼 독트린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도덕적 우위에 섰기 때문에 미국민의 지지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창고에 들어가 있는 먼지 묻은 이 팻말을 집무실에 다시 갖다놓고 이번 포로 학대사건을 원점에서 철저하게 재조사하고 책임 소재를 밝힘으로써 미국의 도덕성과 신뢰성을 회복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번 사건을 일부 미군들의 문제로 치부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다면 부시 행정부는 동맹국들로부터 외면당할 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적 지지 기반도 급속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사건을 부시 독트린의 일방주의적 사고의 문제점들을 인정하고 수정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는 힘이 지배하는 정글의 세계이지만 그 힘이 도덕적 정당성에 의해서 뒷받침될 때 세계질서는 안정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다자주의적 틀뿐 아니라 국제기구도 무시하는 제국의 오만함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일방주의적으로 시작했더라도 전후 처리 과정은 유엔과 유럽 및 아랍국가들과 함께 다자주의적으로 처리했더라면 이라크는 훨씬 더 빨리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번 사건의 조사에 유엔과 국제 인권기구들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여타 국가들과 더불어 세계 질서를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실패는 사분오열된 이라크를 내전의 늪으로 빠뜨릴 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선의의 패권국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5.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