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 반드시 실천을
	2004-05-06
‘새로운 정치’ 반드시 실천을 우리 정치권이 4·15총선 이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했는데, 앞으로는 새롭게 태어날 정치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희망을 갖게 된다. 최근 우리 정치의 새롭고 흥미로운 현상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3일 여야 대표가 만나 ‘새로운 정치와 경제 발전을 위한 여야 대표 협약’을 발표한 것이다. 과거 수많은 여야 영수(대표)회담이 있어 왔지만 이번처럼 ‘공동발표문’이 아닌 협약을 채택한 것은 우리 정치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민에 대한 이러한 여야 약속이 실천에 옮겨져서 새로운 정치의 구현과 국회 운영의 새로운 ‘틀’로 정착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여야는 17대 국회부터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하자는 뜻으로 우선 경제 살리기에 중점을 두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정상적인 의회정치를 하자는 3대 원칙을 약속했다. 이어서 현안인 한반도 평화와 남북 문제에 적극 대응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 만들기 등 5대 핵심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위한 실천기구로 5개 특위를 구성키로 합의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국회를 위한 시동을 건 것이다. 여야의 이 같은 약속이 과연 끝까지 잘 지켜질지 궁금하지만 이번에는 여야가 국민의 기대를 쉽게 저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정치의 두 번째 새로운 현상으로는 총선 이후 우리 정당들이 탈지역주의 정책정당으로 가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변화의 신호가 있다. 이는 17대 국회의 원내 제1, 2당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당선자들의 이념 성향에서 나타난다.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당선자의 다수(56%)가 ‘중도진보’인 반면 한나라당의 다수(65%)는 ‘중도보수’를 표방한 것이다. 물론 이 양당에는 그밖에 ‘중도’ ‘진보’ 및 ‘보수’를 표방하는 소수의 목소리도 있다. 양당의 연찬회에서도 당의 정체성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이러한 이념 성향에 대한 조사는 이번 17대가 처음인데, 뚜렷한 진보 노선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시대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이러한 각당의 정체성 및 이념 성향 표출은 더 이상 지역주의에만 호소하지 않고 노선 및 정책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는 선진국의 정당들처럼 우리 정당들도 선진화의 첫걸음을 내디뎠음을 의미한다. 선진 현대 국가들의 정당은 대체로 중도 노선을 표방한다. 왜냐하면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고 모든 계층을 망라한, 국민을 위한 정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중도는 ‘넓은 중도’를 의미한다. 전통의 보수 및 진보 정당들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를 지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책 내용에서 순수 중도는 적고 중도보수 및 중도진보의 노선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운데를 지향하기 때문에 가운데를 중심으로 한 ‘넓은 중도’ 안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오늘날, 산업사회 삶의 형태가 탈(脫)전통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개인화하는 현대 사회의 변화는 중산층의 역할 증대와 맞물리면서 ‘넓은 중도’라는 소모적 이념 투쟁을 넘어서는 노선을 정착시킨다. 유럽의 대표적인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의 ‘제3의 길’ ‘신(新)중도’ 노선도 현실적인 정책 프로그램의 내용은 ‘넓은 중도’ 속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국회의 원내 제1, 2당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당선자 다수가 각각 중도진보 및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 차원에서는 중도진보가 아닌 개혁, 실용 정당을 내세웠다. 다만 실제 정책 내용 면에서도 이 같은 노선들이 체현돼야 증명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마다 당내에 그밖의 여러 이념 성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노선을 둘러싼 당내 논쟁과 갈등도 예견된다. 이제 여야 대표가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했고 앞으로 각 정당도 노선 및 정책 경쟁을 활발하게 할 것이다. ‘넓은 중도’ 안에서 소모적인 정쟁을 피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각 정당이 새 정치를 실천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국가사회와 정치의 선진화가 달성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김우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5.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