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단추 잘못 끼운 석굴암 모형관

국보 제24호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인 석굴암의 모형 전시관을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우리는 못내 안타깝다.

12일 문화재청이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현장 설명회에 모형 전시관 심의를 담당했던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위원들이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가 무산돼 버렸다.

이러다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화재위원 간에 자존심을 건 감정싸움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석굴암 보존과 관람객의 이해를 돕자는 모형관 건립에 이견(異見)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은 문화재청의 행정 미숙 때문이라고 본다.

문화재청이 모형 전시관의 건립 심의를 문화재위원회의 6개 분과 가운데 건조물을 담당하고 있는 1분과만 거치게 한 탓이다. 1분과는 기존의 건조물이 보존할 만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기왕의 건조물 문화재의 보수가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지하 1층.지상 1층의 1백20평이나 되는 이 모형 전시관의 신축은 불국사 전체의 경관, 석굴암과 불국사의 관계, 모형관에 놓이게 될 본존불의 미학적 가치 등을 감안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다. 따라서 신축의 전제 조건으로 1분과 심의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이 대체적 판단이다.

문화재의 모형물 제작 경험도 일천할뿐더러 국보급 문화재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모형관 건립은 우리로선 처음 있는 일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일수록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모형 전시관의 위치는 불국사 경내를 훼손해서도 안되고, 석굴암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효과가 반감된다. 이를 절충하는 묘안이 필요하다.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모으되, 최종 판단은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회의에서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잘못 끼운 단추를 그대로 두고서는 옷을 바르게 입을 수 없다.

출처 - 중앙일보 2002. 4. 13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