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용천역 참사의 교훈
2004-04-26
北 용천역 참사의 교훈 지난 22일 발생한 북한 평안북도 용천역 참사는 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 비극적 사건이다. 이번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는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북한의 공식 발표대로 부주의로 인한 단순 사고일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 수색과 구조작업의 진척 여부에 따라 보다 상세한 사상자나 피해규모가 밝혀지겠지만 현장을 답사한 국제조사단의 1차 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개략적인 윤곽은 파악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과 대책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고 매우 신속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사고 원인과 관계없이 일차적 피해자는 사망자를 비롯한 1000여명에 달하는 부상자들과 8000명이 넘는 이재민들이다. 부상자와 이재민들을 위한 의약품·식량 등 긴급구호 용품과 신속한 피해 복구를 위한 기술과 장비 지원 등을 앞다투어 제공하겠다고 한다. 북한 당국도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이례적이라 할 만큼 사건 경위를 신속히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구호활동과 지원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참사는 비극이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인식과 대응 여하에 따라 북한 사회의 대외적 개방과 내부 체제 정비를 가속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그동안 북한은 크고 작은 사고, 특히 불미스러운 사건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국제적으로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신속히 보도한 것은 사태의 엄중성만큼이나 북한이 처한 대내외 환경이 변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상공을 24시간 감시하는 미국 정찰위성이 아니더라도 용천역이 신의주·중국 단둥과 인접지역이어서 중국 화교나 조선족들의 왕래가 빈번하다는 점에서 북한 당국이 사건 전말을 신속히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천역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북한 당국이 즉각 용천군 재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차적 과제로서 사고 피해를 하루속히 복구하고 피해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점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행태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사건의 정치적 중대성에 비춰 책임자 색출과 엄중한 처벌, 이에 따른 사회통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예견되지만 그보다 국제사회에 대한 지원요청과 함께 자체 피해 복구와 이재민 구호에 치중하려는 모습은 북한 지도부가 선택한 개방노선에 따른 향후 전략과 관련해 주목할 변화로 보인다. 동시에 용천역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점에서 북한 당국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신호체계 등 철도시설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간접시설이 낙후된 상황에서 개방을 통해 보다 많은 인원과 물자가 이동될 것이라고 할 때 조속한 시설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2, 제3의 용천역 참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제한된 역량에 비춰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점을 고려해 핵문제 등 제반 현안에 대해 북한 지도부의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또한 북한은 자력갱생식 고난의 행군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과도한 희생을 강요해 왔던 기존 정책을 전면 개정해야 할 것이다. 과거 천리마운동 때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식, 90년대식 속도전의 구호 속에 각종 돌격대 등을 조직해 노동자·일반주민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성과 위주의 무리한 경제 건설에 매진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규모 노력 동원 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노동자, 농민, 군인, 청년학생, 부녀자 등을 영웅화하여 선전에 활용하기보다는 단 한명의 고귀한 생명도 존중하는 사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열차 운행에 따른 파행적 관행이다. 이번 참사에 따른 사회의 부정적 소문 차단을 위해 북한 당국이 무척 신경을 쓴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지도자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절대권력은 개방사회 제1의 공적이다. 김 위원장이 중국의 새 지도자들을 만나고도 중국의 사회변화와 발전의 핵심 요인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면 귀환 직후 발생한 용천역 참사를 통해서라도 진정한 교훈을 얻기 바란다. 출처 - 세계일보 2004. 4.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