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행보 신중을
	2004-04-23
盧대통령 행보 신중을 노무현 대통령이 ‘식탁정치’를 본격화하면서 정치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어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노 대통령은 4·15 총선 직후부터 열린우리당 핵심인사들과 잇따라 회동하고 6월 5일에 실시될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를 언급하는 등 여당의 영수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 대통령은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행동은 논란이 될 만하다. 지난 3월 12일 국회는 헌정사상 초유로 대통령의 탄핵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로 인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탄핵 가결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한달 후 실시된 17대 국회의원 선거는 탄핵 찬성 세력에 대한 정치적 심판이나 다름없었으며, 마치 대통령선거를 연상케 했다. 이로 인해 이번 총선에서 정책과 인물대결은 실종되고 ‘바람의 정치’가 정치권의 지형을 바꾸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권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국민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152석의 국회의원 과반을 확보해 힘을 받은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을 통해 노 대통령이 이미 재신임과 함께 탄핵의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총선 직후 정치적 타결을 통해 헌재에서 진행 중인 탄핵심판을 기각하자고 한나라당에 제의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역시 4·15 총선으로 재신임을 받았다는 등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다. 이는 헌재 탄핵심판 이전에 총선 승리를 통해 정치적으로 복권되었음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여권 인사들은 비민주적 헌재에 의한 탄핵심판의 부당성까지 거론하였다. 이는 참으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1년은 그야말로 힘든 세월이었다. 국민적 에너지의 지나친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정치권은 민생과 경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만을 일삼았다. 국론은 이념적, 지역적, 세대별로 분열되었으며, 통합의 정치를 요구하는 시대적 소망에도 불구하고 ‘분열과 배신의 정치’가 판을 쳤다. 대통령의 불안한 언동과 당리당략, 개인적 이해에 따른 배신, 불법 대선자금 문제, 대통령의 측근비리, 민생고, 경제상황의 불안정, 북핵과 한미관계 등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러한 것들이 지금의 탄핵정국을 야기한 단초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 대통령도 작금의 사태에 정치적 책임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부덕의 소치를 타인에게 전가해서도 안 된다. 이제 모두 헌재의 결정을 냉철하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얼마 안 있으면 헌재의 결정이 날 터인데 무엇이 그리도 다급하고 바쁜가. 어떠한 정치적 움직임이나 정치세력들의 경거망동한 행위는 더 큰 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헌재의 결정에 영향을 주려는 행동을 자제하고 또 헌재의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여론조사 결과,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52%의 응답자 반응을 노 대통령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도 아직 탄핵국면인데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있다. 총선 승리로 고양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다리는 지도자의 모습을 볼 때 국민들의 신뢰는 깊어질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을 민생을 위해 고뇌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아직도 국민들은 경제위기와 민생불안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북중 정상회담 등 동북아 정세는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흐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큰바위 얼굴의 지도자를 기대해 본다. 김성주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4. 4.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