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선택권’ 왜 빼앗나
2004-04-12
‘교육의 선택권’ 왜 빼앗나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나, 교육문제가 뜨거운 감자라는 것은 여전히 진실을 적시한다. 평준화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유발하기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평준화 폐지는 현재의 대학 서열에 기인한 학벌 구조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할 뿐이라는 주장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진 채 맞서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문제에 대해 단언하기에 무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여러 논의에서 중요성에 비해 별로 부각되지 못했던 교육에서의 기본권 문제만은 짚어 보고 싶다. 받고 싶은 교육을 받고, 하고 싶은 교육을 하는 그 선택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교육 수요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필자는 왜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에서는 받고 싶은 교육을 선택할 권리가 부정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수요자의 측면에서 필자의 현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은 교육을 선택할 권리가 두 가지 면에서 부정돼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는 교육 서비스가 교육부의 지침과 통제에 의해 획일적인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자의 욕구가 획일적이지 않은 건 분명한데, 우리나라 초·중등교육이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천편일률적인 목표와 교과 과정에 따라 운영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음식 비유를 쓰자면, 다 똑같은 음식만 먹으라고 강요당하는 것과 같다. 똑같은 음식을 먹도록 강요당하는 것만도 억울한데,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똑같은 음식을 ‘지정된’ 식당에서 먹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두 번째 불만이다. 같은 음식을 먹는데, 어느 식당에서 먹든 무슨 차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같은 음식이라도 맛있게 하는 곳이 있고, 대충대충 하는 곳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는 두 학교에서 제공되는 교육의 질에 현격히 차이가 있더라도 지정하는 곳에 가서 운명을 맡기라고 한다. 팔자 소관이니 군말 말고 정하는 데에 가서 주는 음식이나 받아먹으라고 말하는 격이라고 하면 심한 말일까? 다양한 교육 서비스에서 한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의 부정과, 같은 종류의 서비스 사이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의 제한이 교육 수요 측면에서의 문제라면, 교육 제공자가 똑같이 정형화된 교육을 제공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은 교육 제공 측면에서의 문제다. 이런 제약은 하고 싶은 교육을 할 기회를 봉쇄하는, 교육의 선택권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침해다. 교육 제공자로부터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선택에는 정보라는 요소가 개입하기 마련이며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평가가 필요할 터이다. 특히, 교육 제공자나 기관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 서비스도 일종의 서비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의 서비스에 대해 평가받는 건 당연하다. 교육 제공자나 기관을 1등부터 꼴찌까지 순서를 매기는 것이 평가의 목적이 아니라, 수요자의 평가가 자신의 서비스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리고 교육 제공자에게 자신의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보장한다면, 평가에 반대할 교육 제공자나 기관은 아마 없을 것이다. 평준화와 획일화는 다른 것이기에, 그리고 획일화는 교육에 있어서 선택권을 침범하는 것이기에, 필자는 평준화의 이상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획일화로 흘러 버린 평준화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교육부의 그간의 공(功)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교육 제공자와 수요자에 의해서 구성되며 교육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것도 이들 두 주체다. 교육부가 교육 주체를 대신해서 교육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교육에 대한 욕구는 너무 다양하여 교육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순간 그 결정이 소외시켜 버리는 욕구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욕구에 부합할 수 있는 역동적인 교육은 교육 현장이 교육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에만 가능하다. 교육부는 교육부만이 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 평가, 정보 제공의 업무를 담당하고, 교육 현장은 제공자와 수요자의 자유로운 선택의 역학에 의해서 구성되는 교육을 보고 싶다. 교육부는 목표와 큰 틀만 제시하고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교육 주체에 맡겨져 있는, 교육 주체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그런 교육 말이다. 출처 - 문화일보 2004. 4.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