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사회에 통합시켜라
2004-04-08
노인을 사회에 통합시켜라 선진국에서 60, 70대는 그냥 노인이 아니라 ‘젊은 노인’이다. 이 젊은 노인들은 노동시장으로부터는 물러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떻게 하면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을지에 골몰한다. 그리고 사회도 이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2002년에 열렸던 제2차 세계고령화회의에서도 노인을 의존적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보는 기존의 관점을 벗어나 어떻게 하면 노인을 사회에 통합시킬 것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촉구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인구 고령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은 무엇보다도 노인의 사회적 기여를 증대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연령통합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선진국이나 세계고령화회의의 권유 내용과는 딴판인 사회다. 즉, 우리 사회는 연령에 따라서 사회 발전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되는 경직된 ‘연령차별적 사회’다. 나는 요즘 한창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한 정치인의 연령차별적 발언과 관련한 움직임을 보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정치인이 어쩌면 그리도 동 시대 사람들에게 무심할 수 있는가, 60~70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공경’이 아니라 ‘참여’라는 것을 어쩌면 그리도 모를 수 있는가, 노인들의 욕구에 그토록 무감각한 정치인이 노인복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한들 그 정책의 내용이 얼마나 알차고 효과적일 수 있을까… 등. 더욱 이해하기 힘든 건 동 시대를 사는 60, 70대에게는 그리도 무심한 정치인이 동 시대를 사는 20, 30대 젊은이들의 동향과 참여에는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20, 30대를 위해 정말 도움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거나 바람직한 대책을 제시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으니, 결국 정치인들이 그토록 20, 30대를 의식하는 건 자기들의 얄팍한 이해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 그렇다고 이번의 연령 차별적 발언이 모두 부정적인 효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기를 못 펴고 조용하던 60, 70대들이 드디어 일제히 입을 열었으니까. 연전에 퇴직자 연구를 할 때, 한 조기퇴직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생각하면 참 억울한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까지도 50대 후반도 너무 젊다는 분위기 아니었나요? 그런데 갑자기 나이가 너무 많다고 나가라고 하다니….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는 점점 더 젊은이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나이 든 사람들의 경륜과 지혜를 통째로 무시하면서 이뤄지는 발전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더 답답한 건 이런 얘기를 도대체 어디 가서 할 데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번에 선거를 앞두고,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연령 차별 문제가 이처럼 크게 공론화된 데 대해 안도감마저 느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연령 차별 문제가 한 차원 높게, 그리고 한 차원 깊게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연령에 따른 획일적인 인원 감축이 당연시되면서도, 또 다른 편에서는 노인의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이 이뤄지는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국민들의 혼란스러움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번의 논의를 통해 과연 우리 사회에 맞는 노인복지의 모습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더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우리의 노인복지가 아직도 가난하고 병들고 자식 없어 ‘오갈 데 없는’ 노인에 대한 시혜적인 동정을 베푸는 데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온통 선별적이고 잔여적인 복지 서비스만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지, 변화하고 있는 노인들의 다양한 특성과 욕구를 얼마나 감안하고 있는지, 노인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지, 노인의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나 프로그램은 얼마나 마련돼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답할 때가 됐다고 본다. 나는 이참에 60, 70대를 포함한 노인을 보는 국민 개개인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노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노인에게 ‘참여’보다는 ‘공경’을 앞세우는 정치인의 무지와 무관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4.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