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도 뒤지는 '평등의료'
	2004-04-06
중국에도 뒤지는 '평등의료' 정부가 경쟁을 원천봉쇄 … 건강보험 규제 풀어야 정부가 인천경제특구에 외국의 유명 병원들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지 1년이 넘었건만 아직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상태다. 결정을 내렸으면 행동으로 옮겨야지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시간만 끌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러는 사이에 경쟁국인 싱가포르는 의료 분야에서 우리를 이미 앞서갔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동북아 의료 허브(hub·중추)’로 도약한다는 국가목표를 착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의료시장의 세계화는 차라리 다음 문제다. 우리는 현재 소비자인 국민이나 공급자인 의사들이 의료제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불만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낮은 의료수준과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들은 의료수가는 낮은데 규제만 까다롭다고 불평하고 있다. 소비자도 공급자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의료에서 ‘형평’ 이념을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사실 수요와 공급 어느 측면에서도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부는 지난 2000년 건강보험을 하나로 통합시켜 수요 측면에서의 경쟁을 원천봉쇄하였다. 또 모든 의료기관들이 보험환자만 받도록 규정, 공급 측면에서의 경쟁도 원천봉쇄하였다. 의료보험이 이렇게 운영되다 보니 영리를 추구하는 외국병원들이 한국시장에 들어올 이유가 전혀 없었고, 그 결과 ‘의료 쇄국주의’가 자연스럽게 지켜진 것이다. 정부는 폐쇄적인 의료제도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형평을 들고 있다. 모든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정부가 수가를 고시하고 의료행위를 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전(全) 국민 의료보장이 실현되기 이전에는 맞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전 국민이 의료보장을 받고 질 좋은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선 이 같은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보험환자를 받지 않고 수가를 자율 책정할 수 있는 병원의 등장을 허용할 때가 되었다. 영국과 같이 세금으로 전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국가에도 자비부담 병원이 있으며, 우리보다 늦게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한 대만도 자비부담 환자만 받는 비(非) 보험병원을 인정하고 있다. 오늘의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의료시장에서도 경쟁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시장이라는 용어는 경쟁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수요자도 공급자도 만족하는 것이 경제법칙이다. 의료의 수요측면에서는 건강보험제도가 경쟁 원리에 따라 작동되도록 보험관리 단위를 나누어야 하며, 민영(民營)보험의 적극적인 참여도 가능해야 한다. 공급측면에서는 보험환자를 보지 않는 병원도 허용해야만 의료시장에서도 진정한 경쟁이 살아난다. 비보험 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에 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험병원의 노력이 의료의 질을 제고하며 소비자 만족을 충족시킬 것이다. WTO로 상징되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우리나라가 생존하려면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농업과 제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등 서비스 분야도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 의료가 경쟁력을 상실한 것은 의사들이 의학지식이 부족하고 진료기술이 없어 그런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제도를 형평을 이유로 경쟁보다 규제와 획일주의로 운영한 데서 빚어진 결과다.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4.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