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경제팀에 바란다
	2004-02-19
이헌재 경제팀에 바란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에 취임했다. 일단 시장의 반응은 금융과 구조개혁의 전문가이며 경제활성화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취임에 대해 호의적이다. 안병영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박봉흠 정책실장,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등의 등용에 이어 대통령의 인사정책이 코드중심에서 전문성과 능력 위주로 바뀌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러나 李장관이 성공한 재경부 장관으로 남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난관들이 너무 많고 그에게 주어진 권한은 너무 적다. 그리고 이 난관들은 이헌재라는 자연인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2000년 DJ(김대중)정부하에서 7개월 남짓 수행했던 재경부 장관으로서의 성적표도 그리 좋지 않다. 단기에 성과 낼 욕심 버려야 지금은 개혁의 전도사로 불리지만, 그 당시에 2차 공적자금 투입 지연과 대우 부실채권을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막대한 공적자금의 낭비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해 8월 그가 경질된 이유는 시장신뢰 상실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과 경제위기설, 구조조정 지지부진으로 인한 개혁 피로감, 그리고 이기호 경제수석.진념 기획예산처 장관.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경제팀의 팀워크 부진 등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당시 그가 물러나게 된 원인들이 바로 신임 재경부 장관으로서 그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인 것이다. 더욱이 IMF 경제위기로 인해 각종 이익단체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위기극복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국론이 통일돼 있던 그 당시와 비교해 정부와 여당이 따로 놀며 각종 이익단체들이 나라를 유린하고 있는 현재는 주변 여건 또한 불리하기 짝이 없다. 이헌재 경제팀이 총선용이 아니고 진정 이 나라의 경제를 되살린 주역으로 남기 위해선 먼저, 짧은 기간 내에 획기적으로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2000년 8월 李장관을 대체한 진념 경제팀이 무리하게 경기부양책을 쓴 결과가 작금의 신용카드 부실과 부동산가격 불안정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의 회복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원자재가격.이자율.원화가치 상승의 3고 현상, 총선을 앞둔 정치불안, 대선자금 수사, 대북문제를 둘러싼 이념갈등, 노사갈등을 포함한 집단이기주의, 카드부실.가계부채로 인한 금융불안, 원화절상 압력과 외환시장 불안, 내수 부진, 실업문제 등의 악재들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부총리가 경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치.사회적 문제는 대통령이 책임지고 풀어주어야 한다. 경제팀이 해결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원자재가 폭등.환율 불안 같은 외부환경 악화 요인을 최소화하면서, 개인신용불량자.카드사 및 투신사 부실 등의 시장불안 요인을 시장원리에 충실한 구조조정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 당면한 경제침체와 실업문제는 재정지출과 같은 편법에 의존하지 말고, 국내외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총선용 선심정책은 이제 그만 둘째, 이를 위해선 소신있게 경제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지난 1년간 김진표 경제팀이 우왕좌왕한 이유가 정권(진보주의적 정권 핵심세력)과 정부(재경부를 포함한 경제부처) 간의 철학과 국정운영의 불일치에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수장이 'no'라고 해야 할 사안들도 과감하게 'no'하지 못하고 억지로 코드를 맞추려한 데 있었다. 최근 겉으로 보기엔 시장주의자들이 중용되고 있지만 아직 정권의 핵심엔 경제철학이나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진보적인 사람들이 견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만약 이것이 투자와 경제활성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대통령에게 제거를 요구해야 하고, 이런 문제들로 자신의 경제정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될 땐 미련없이 자리를 던지는 소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발언과 선심성 정책의 남발을 자제함으로써 이 나라 경제수장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고 경제전문가 그룹과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2. 1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