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중 청문회는 안 된다
	2004-02-02
수사중 청문회는 안 된다 엊그제 개최된 국회 법사위에서 불법 대선자금과 노무현 대통령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청문회 개최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청문회 개최 문제를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은 대선 당시 盧후보 측 선대위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고 나섰다. 청문회가 열릴 경우 김원기.정대철.이상수 의원 등 盧대통령 캠프 관계자들과 대선자금 수사를 맡은 검찰 수사팀, 한나라당에만 돈을 주었다고 진술한 기업인 등이 증언대에 서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고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을 못 믿겠다며 특검까지 설치한 마당에 또 다시 청문회가 열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검찰의 수사 결과 '차떼기당'이라는 치욕적 낙인이 찍힌 입장에서 행여 수사 검사들을 불러내 한바탕 호통을 치고 모멸감을 주어 수사 의지를 꺾으려는 것은 아닌지. 한때 반짝했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존립마저 위협받을지 모르게 되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정치적 국면을 전환하려는 발상은 아닌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청문회 개최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검찰과 특검의 수사가 미덥지 못하고 편파수사로 기울 수 있기 때문에 비리 의혹에 대해 국회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비판은 아랑곳없이 파렴치한 비위에도 불구하고 동료의원 8명을 불체포특권을 방패 삼아 감싸안았던 게 언제든가. 방패막이가 사라진 뒤 한 달도 채 못 돼 철창 신세를 지게 된 국회의원 숫자가 열명을 훌쩍 넘었다. 앞으로 스무명에 육박해 교섭단체를 차려도 되겠다는 보도도 나온다. 청문회 논란의 핵심인 불법 대선자금 부분은 현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 국회에서 청문회를 놓고 격론을 벌이는 여야 정치인들 상당수가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 없다. 청문회에서 검사들에게 호통을 칠 정치인 중 불법자금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수사 대상자로 자리바꿈하게 될 분은 없을지 걱정이다. '매를 맞아야 할 사람들이 매를 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청문회 개최의 근거가 되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8조에서는 "감사 또는 조사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사건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모두 카메라 앞에 서게 돼 진실을 은폐하거나 서로 말을 맞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수사 중인 검사들을 증언대에 세워 호통을 치고 나무랄 때 그 수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국회 청문회가 열린 선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옷 로비 의혹 관련 청문회나 파업유도 발언 관련 청문회 등 지금까지 열렸던 수차례의 국회 청문회는 모두 수사는 종결됐지만 국민적 의혹이 남아 있던 경우였다. 이번에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게 되면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나 특별검사를 별도로 임명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청문회를 하는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비리에 대한 수사는 검찰과 특검에 맡기고, 정치권은 돈정치 청산을 위한 정치개혁에 주력해야 한다. 물론 검찰과 특검도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선입견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한점 숨김없이 진상을 밝혀야 한다. 국회에서 청문회 개최의 필요성이 제기된 자체만으로도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가 과연 공정했는가 되돌아 보아야 한다. 반면 정당들도 수사 사건을 정치선전이나 정쟁도구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비리에 대한 자료가 입수됐다면 지체없이 검찰이나 특검에 제출해 수사하게 하는 것이 정도다. 이 시점에서 역사가 정치권에 부여한 엄숙한 사명은 하루빨리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만드는 일, 정치개혁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시대의 요청을 외면한다면 정치권은 국민으로부터 훨씬 더 냉혹한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공법학 교수) 출처 - 중아일보 2004. 2.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