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부동산 정책
	2004-01-10
치매 걸린 부동산 정책 양도세 벌금수준으로 올라 … 결국 공급줄어 가격 오를것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부동산 대책은 전반적인 부동산 과세 강화, 특히 1가구 다주택 보유에 대한 중과세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부동산 보유과세의 강화는 80년대 말 이래 여러 연구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했지만 이처럼 왜곡된 형태는 아니었다. 예컨대 부동산 조세의 총액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보유과세의 비중을 높이거나, 양도소득세도 전반적으로 단순화시킴으로써 실효성을 높이자는 내용이었다. 또 주택보다는 토지의 세 부담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대로 간다면 토지, 주택 모두 보유과세가 강화되고, 1가구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가 사실상 벌금 수준으로 높아진다. 취득·등록세 등 거래세도 대폭 늘어난다. 이처럼 세금만 늘리는 식의 정책을 고집하면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첫째, 신규 주택건설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 주택수가 고정 불변이라면 ‘남이 집을 가지면 나는 못 갖는’ 제로섬 관계가 된다. 하지만 주택시장은 그렇지만은 않다. 주택개발, 건설, 구매 각 단계의 수익성이 보장돼야 주택이 지어지고 팔린다. 최근 수도권 전셋값이 하락하는 것은 지난 2~3년간 집값이 오르면서 건설회사들이 주택을 앞다퉈 지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분양시장 침체가 장기화되고 조세를 통해 보유 자체를 규제할 경우, 주택을 분양받으려는 수요가 급감할 것이다. 수요가 없는데 어떤 업체가 주택을 짓겠는가. 결국 주택 공급이 크게 줄어 장기적으로는 주택이 부족, 주택 가격이 다시 급등할 것이다. 지난 2~3년간 주택가격이 급등한 것은 IMF외환 위기 이후 집값이 떨어지면서 주택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건설업체들이 주택을 짓기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 주택임대시장은 1가구 다주택자들의 잉여 주택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소수의 공공임대 주택을 제외하고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주택공급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임대만을 위해 지어진 집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자연 발생적인 임대시장이 형성된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만일 극단적으로 정부 의도대로 1가구 다주택자들이 잉여주택을 모두 처분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택가격이 폭락해서 목돈을 가지고 있던 무주택자들이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 이후에는 집을 살 수 없는 저소득층은 집을 임차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마지막으로 세금을 올리기 위해 미국의 재산세가 집값의 1∼1.5%라는 사실이 강조되지만, 미국 재산세 세수의 상당 부분은 좋은 학교를 만드는 데 들어간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과외 학원비가 들지 않도록 해주는 대가인 셈이다. 또 재산세 수준은 지역주민들이 결정하며, 자치단체는 세금을 올리기 전에 그 돈을 가지고 어떤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를 먼저 제시한다. 현재 우리의 경우 대도시 구청들은 굳이 세수를 올릴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정부가 이를 올리라고 강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세금만 더 내고, 과외 학원비는 여전히 많이 드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없다. 불과 5년, 10년 전의 경험을 깡그리 잊고, 실패한 정책을 무언가 새로운 것처럼 다시 내놓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부가 과거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에 빠진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4. 1.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