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북극성 역할 하라
	2004-01-05
언론이 북극성 역할 하라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국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우왕좌왕은 지난 한 해로 충분하다. 한밤중에 북극성을 향해 노를 젓는 뱃사공은 그곳에 곧 도달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방향이 옳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신념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좋게 보면 민주화를 거치면서 다원화된 사회고 나쁘게 말하면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다. 정치권력이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었고, 언론마저 양극으로 갈라져 대립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남북관계.대미관계.노동문제 등 이념적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쟁점에 대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은 상호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방송의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보면 보수언론을 헐뜯기에 여념이 없고, 보수언론은 이를 맞받아치기에 바쁘다. 이념적 충돌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더욱 격화돼 각각의 이념적 선명성은 부각됐지만 양측은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처럼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으므로 특정한 이념으로 확실하게 무장돼 있지 않은 대다수 독자나 시청자는 곤혹스럽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밀려오는 것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다. 갈등과 혼란은 사회변화의 과정이다. 그래서 이 과정을 슬기롭게 겪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갈등이 관리불능의 상태로까지 악화됐을 때, 즉 갈등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도를 점검해 봐야 한다. 언론의 이념경쟁으로 말미암아 사회제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증폭되지 않았는지를 반성해 볼 때다. 이념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여러 언론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대다수 독자는 자신들의 정치적 취향에 맞는 신문만을 골라 읽는다. 인터넷 사이트로 뉴스를 접하는 젊은 세대들의 뉴스 편식은 더욱 심각하다. 자신의 이념적 코드에 맞는 사이트만 즐겨 방문하고 자신과 비슷한 이념적 성향의 사람들과만 대화하면서 끼리끼리의 연대의식을 강화해 나가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을 하루 아침에 없애고 일사불란한 체제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격화된 갈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순화하는 것이다. 언론은 갈등이 감정적.물리적 충돌로 나가지 않고 이성적인 정책논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언론은 좋은 저널리즘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충분한 사실에 기초해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를 갖춘다면 독자나 시청자들은 그러한 언론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 결론부터 내놓고 그 결론에 맞는 사실들을 끼워 맞춘 후에 주입식 계몽을 위한 해설을 덧붙이는 보도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이미 그런 결론에 동의하는 독자나 시청자들만이 환영할 뿐이다.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사실 확인 노력을 충분히 기울인 뒤에 주장할 부분이 있으면 주장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그대로 전달해 독자들이 판단 내리게 하는 보도가 국민 설득에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제 특검 정국과 총선 정국을 앞두고 정쟁의 열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다. 정치권의 물갈이 요구가 더욱 강해지면서 정치적 갈등이 주요 보도소재로 등장할 것이다. 진실추구 노력과 공정보도로써 정파적 보도에 식상한 국민의 정치개혁에 대한 관심을 돌이키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언론의 적극적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가야 할 길이 멀어도 확실한 방향을 보여주는 북극성의 역할을 언론이 해주길 바란다. 윤영철 (연세대 신문방송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1. 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