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인물 검증 가혹하게 파헤쳐야

박정희 52%, 이승만.김대중.노태우.김영삼 등은 10% 이하. 한국 국민들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조사한 한 여론조사 결과다.

민주적 절차인 선거에 의해 뽑힌 대통령들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이 더 높이 평가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워싱턴 포스트의 정치 칼럼니스트 데이빗 브로더는 "대통령직은 정책과 국가 경영 능력보다는 인격의 시험장이다"라고 말하면서 대선 후보 인물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언론은 대선 후보의 평가를 위해 여러 위원회와 기준을 만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위버 교수 등이 하버드 대학 저널에 발표한 10가지 기준이다.

성장 및 교육 배경, 지식, 출마동기, 인성, 인간관계, 대화방식, 지도력, 정치행위 유형, 의사결정 유형 그리고 국가 경영 능력 등이다.

미국 신문들은 이러한 기준들에 따라 대선 후보들의 동네 친구, 학교 동창, 지도 교사, 직장 동료, 친인척 등을 취재.인터뷰해 유권자에게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인물인지 알려준다.

미국 신문들은 후보들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 '인격해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정밀하게 취재해 보도한다.

1988년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던 게리 하트는 마이애미 헤럴드 등 언론의 집요한 인물 검증 과정에 걸려 중도포기를 했고, 클린턴과 부시는 언론의 혹독한 인물 검증을 극복하고 당선됐다.

미국 언론의 대선후보 인물검증은 사적인 스캔들 그 자체보다는, 이런 사건들과 관련해 후보들이 진실을 다루는 태도 및 인격을 검증하는 것이다.

국민경선제의 도입이 새로운 한국 정치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당은 7명이 출발하여 3명만 남았고, 한나라당은 4명으로 출발하는데 몇명이나 완주하게 될지 궁금하다.

언론이 각 당의 후보경선 과정에서 후보를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시점은 각 당이 대선후보를 확정한 이후다.

각 언론사는 대선후보 인물 검증 특별기획팀이나 자문위원회 혹은 시민포럼 등을 운영할 수 있다.

만약 편집국 인력이 부족하다면 아웃 소싱을 통해 전문가 그룹, 프리랜서, 대학생 기자, 신방과 학생 등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판세 및 당락 파악을 위해 정확하지 않은 여론조사들에 수십억원을 투자하기보다는 그 돈을 후보 인물 검증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후보에 대한 고급정보와 분석을 축적해 후보 인터뷰와 TV토론에 활용한다면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한국에서도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대선후보들에 대한 언론의 검증 작업은 때로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가혹하고 철저해야 한다.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상원의원인 에드워드 케네디는 항상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거론되지만 후보 경선에 나가지 않는다.

미국 언론의 혹독한 인물검증 과정을 통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대선후보 인물검증에 대한 언론의 혹독한 통과의례가 새로운 선거보도 문화로 정착될 때, 아무나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양태도 사라지고, 정치인이 대선 경선에 나갈 때 다시 한번 생각하는 정치문화를 만들 수 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출처 - 중앙일보 2002. 4. 8 미디어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