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과 소유권  

구조조정 아니라 전쟁이라도 소유권 침해는 안 된다  

최근에 발생한 두 가지 사건, 대우채권편입에 관한 법원의 결정과 하이닉스의 추가지원에 관한 논란은 모두 재산권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대우채권편입의 부당성은 수익증권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부의 빅딜정책에 따른 하이닉스 사태 역시 재산권에 대한 침해 결과이다. 이 두 문제가 露呈되면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재산권 침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더 이상했다.

재산권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재산권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보편적 재산권이 아니었다. 여자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고 평민도 제한적인 재산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農奴는 오히려 지주의 재산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등장하고 발전하면서 재산권은 보편성을 갖게 되었고, 재산권이 인권이라고 선언한 학자도 있다.

현대에 와서 이것은 실감난다. 우선 생산수단인 노동이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인 인적자본으로 부활하면서 인적자본의 소유야말로 재산권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됨에 따라 이것은 인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인적자본과 대칭되는 물적자본은 인적자본으로부터 시간 요소를 얻어 파생되는 재산으로서 인권의 연장이 되었다.

재산권은 시장이라는 말과 함께 가장 중요한 개념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학 관련 사전에 등장하지 않았다. 특히 시장이라는 개념은 아직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재산권은 시장에 당연히 주어지는 대상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시장은 물건을 교환하는 기구mechanism이다. 교환이 성립하려면 우선 물건의 소유가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시장은 교환을 통해서 자원이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배분되는 과정의 기구이다. 이러한 연유로 재산권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시장의 범위와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재산권이 잘 정의되면 시장이 확대되고, 시장이 확대될수록 재산권은 더욱 보편화되고 정밀화되어 간다. 그럴수록 시장은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코즈R. Coase가 1960년에 발표한 논문은 그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 코즈의 업적을 비유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으로 붐비는 버스에서 남의 발등을 밟았다. 밟은 사람의 잘못인가 밟힌 사람의 잘못인가. 우리는 흔히 밟은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밟은 사람은, 그렇게 발을 놓지 않으면 척추가 휘어져서 문제가 생기므로 그 자리에 발을 놓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밟힌 사람 역시 先占의 이유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발이 놓이는 버스 바닥의 소유권이 정해져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점을 관찰할 수 있다. 하나는 버스 주인의 측면에서 보면 누가 누구의 발을 밟았더라도 버스 바닥 공간(자원)의 배분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만일 두 개의 발이 모두 내 발이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 예를 확대해 보자. 소유자가 다른 철공소와 세탁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철공소는 석탄을 때서 물건을 만드는데, 이때 검댕이가 발생한다. 당연히 이웃의 세탁소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 보통 생각 같으면 철공소가 세탁소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도 버스의 예처럼 생각해 볼 문제이다. 공기에 대한 소유권 확립의 문제이다. 여기에도 두 가지 문제가 관찰된다.

첫째, 세탁소가 검댕이로 인해 100원 손해를 본다고 하고, 철공소는 공기정화기를 설치하는데 200원이 든다고 하자. 공기에 대한 소유권이 철공소에게 있다고 하자. 세탁소 주인은 검댕이를 내지 않도록 철공소에게 100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지만 철공소의 측면에서는 200원 이상을 받아야 검댕이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공기에 대한 소유권이 세탁소에게 있다고 하자. 철공소 주인은 200원까지 세탁소에게 지불하면 양측이 모두 만족할 수 있다.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건 공기 중에 검댕이의 양은 불변이다. 다시 말하면 검댕이의 배분, 즉 자원배분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이다.

둘째, 세탁소와 철공소가 모두 한 사람이 소유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유자가 한 사람이라면 철공소의 검댕이 생산량과 세탁소의 손해를 저울질하여 이익의 총합이 최대가 되도록 결정한다는 점이다. 건물을 내과의사와 제빵업자에게 분할 임대하였을 때 제빵업자의 기계 소리가 내과의사의 청진기를 방해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소음의 소유권을 갖는다 해도 소음의 크기에는 변화가 없다.

이상의 예에서 자원배분은 소유권과 상관없지만 그렇더라도 누가 소유권을 갖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상의 예가 모두 거래비용이 없는 경우에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물리현상에 마찰이 존재하듯이 경제현상에는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물리현상을 설명하는데 마찰이 없는 것으로 가정하여 핵심을 이해하듯이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 거래비용이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마찰이 없는 이론에 마찰을 부여하면 현실이 설명되듯이 거래비용이 없는 이론에 거래비용을 부여하면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코즈의 업적이고 이 업적으로 그는 노벨상을 받았다.

현실에서 거래비용이 존재하는 경우 소유권은 누구에게 귀속이 되는가. 위에서 보았듯이 정부는 누가 소유하든 상관이 없다. 이 문제의 핵심에 기업의 존재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거래비용이 전혀 없으면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코즈의 1937년 첫 번째 논문의 내용이다. 이 논문 역시 오랫동안 잊혀졌다. 기업은 무수한 사람과 물자의 결합이다. 수많은 사람과 고용계약, 수많은 물자를 위한 구매 및 판매계약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것이 거래비용이다.

이 같은 거래비용이 없다면 구태여 이들을 하나로 묶어 기업을 설립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일이 그 많은 모든 사람과 맺는 고용계약이나, 일일이 그 많은 모든 물자에 대한 계약에 따르는 비용을 줄이고자 만들어 진 것이 기업이다. 코즈의 예를 옮기면, 기업 내부의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사람이 이동하는 것을 고용계약으로 하지 않고 인사부의 명령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기업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코즈 이전에는 기업을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단순한 참여자로 이해했다. 그러나 기업은 시장의 참여자이면서 동시에 시장과 대등한 기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장에서 자원의 배분은 시장투표에 의하지만 기업 내에서 자원의 배분은 명령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명령은 시장이 갖고 있는 고유 특성인 거래비용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이 명령의 근거는 기업의 소유권에서 비롯한다. 기업의 재산권은 시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거래비용을 낮추는 조직에게 부여된다. 자본주의는 시장과 기업이라는 두 축에 의해 움직인다. 이러한 이유로 뎀세츠H. Demsetz는 심지어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고 시장주권market sovereignty이라는 말로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극명하게 설명해 주는 예가 바로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사건인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대동강 물의 소유권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유권이 정립되지 않은 곳에서는 처벌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현대에 와서 태평양주식시장pacific stock exchange에서 거래되는 공해배출권도 본질에 있어서는 이와 다를 바 없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공해배출권리를 주식시장에 경매로 입찰하는 제도를 채택했는데, 공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업이 공해배출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새로운 땅의 발견, 새로운 발상이나 발명, 자원의 새로운 이용법, 새로운 자원의 발견 등을 어느 기업이 소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어 前부통령이 공중파를 경매에 부친 일이다. 공중파는 마르코니가 발견한 이래 주인이 없는 것처럼 여겨져 왔으나, 공중파가 복잡해지면서 여기에 소유권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無主空山에서 소유권은 경매로 결정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앞의 예에서 보았듯이 누가 소유하든지 자원배분에는 영향이 없다. 둘째, 소유자가 정해지면 사용을 가장 강도 높게 원하고 지불할 용의가 조직에게 허락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처럼 소유권의 정체를 밝히면, 그에 따른 새로운 영역뿐만 아니라 현재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까지를 해결할 길이 열린다. 이것은 특히 舊소련의 붕괴로 그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던 체제에서 소유권을 인정하는 체제로의 탈바꿈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舊체제는 소유권의 정의가 원시적이었으므로 소유권의 정의에 따른 거래비용이 상상을 초월해서 매우 높게 지불되고 있다. 나머지 舊공산권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좀처럼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소유권의 再定義로 인한 거래비용을 어떻게 감당 하겠느냐가 한 몫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舊공산체제의 탈바꿈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구조조정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에서 구조조정이란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유권의 정의를 확실하게 해 주고 소유권의 영역을 확대하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유권의 정의가 불분명한 부분에서 높게 발생하는 거래비용을 시장이 견딜 수 없어 발생한 것이 경제위기라면, 구조조정이란 효율성을 높이는 행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성이 높게 자원을 동원하고 이용하는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 구조조정이어야 한다. 효율성을 저해하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거래비용이 높아지면 구조조정은 실패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조조정은 시장과 기업이 두 축을 이루어 시행되어야 한다. 시장에서 거래비용을 가장 낮출 수 있는 기업의 전진과 등장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소유권을 침해하고 있다. TV의 토론에서도 소유권을 침해하는 주장을 옹호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현재가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국난이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전쟁 때에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소유자로부터 물자를 징발할 때 영수증을 써준다. 한국전쟁 때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을 싣고 피난하기 위해서 징발한 트럭에도 영수증을 발급해 주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도 영수증을 써준다. 몇 해 전 독일북부의 어느 집 다락에서 발견된 문서가 그것이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원정으로 지나가던 지역에서 물자를 징발하면서 영수증을 교부해준 것이다. 전쟁도 근본적으로는 소유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유권을 지키고자 목숨을 거는 것이 전쟁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헌법 앞에서 선서하는 내용이 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아니겠는가. 미국이 대공황 때 경황이 없는 가운데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 사례가 있었던가. 소유권을 지키지 못하면 인권도 없고 생명도 없다.

김학은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merge 2001.10월 호에 실린 글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