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 특권 남용말라
	2003-08-04
불체포 특권 남용말라 국회는 8월에도 쉬지 않는다. 남들 다 떠나는 휴가도 반납하고 1일부터 30일까지 임시국회가 열린다. 화급한 민생-경제법안 처리를 위해서는 쉴틈이 없다는 이유다. 그동안 개점휴업 상태의 '식물국회'라는 비난을 씻기 위한 것이라면 손뼉을 치며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며칠간의 일정이 아니라 한달 내내 열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민생처리는 뒷전이고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3명의 동료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동정심의 발로일 것이다. 이제 임시국회 소집의 명분 속에 위장된 편법을 모를 국민은 없다. 여야의 담합 속에 국회가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비리의원의 보호막으로 악용해온 예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의원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면책이 아니라 회기 중에 의원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여 국민 대표기관으로써 국회가 올바로 기능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특권이다. 불체포특권이 헌법에 명문으로 인정되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이렇게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나라도 없다. 이 제도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 개개인의 비리와 부패행위에 대한 보호막으로 남용되는 예는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물론 불체포특권은 과거 전제군주나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된 국회에 대한 정치탄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나마 국회의 기능을 유지시켜 준 제도적 의의를 갖고 있었다. 저항수단으로서의 방탄국회도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군주제에서 의회민주주의로 이행되면서 이 제도의 본래 목적과 정치적 의미는 거의 상실된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폐지되어야 할 제도는 아니다. 국회의 기능과 품위를 지켜줄 정당성을 갖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다만 헌법에 보장된 불체포특권은 다른 한편으로는 평등권, 삼권분립 원칙, 실질적 법치국가 이념이라는 헌법 기본이념에 위배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제한적으로 해석-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국회의원 개개인의 특권이라기보다는 국회의 특권으로 보아야 하며 국회의 기능과 신망을 유지하기 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하물며 방탄국회를 열고 체포동의안 처리를 미루는 편법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법치국가 이념에도 반한다. 국회는 8월 임시국회가 열리면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3명의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소집된 것이라는 국민적 의혹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체포동의안을 지체없이 표결 처리해야 한다. 정치권 내부에서조차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방탄국회를 반대하는 야당 국회의원의 목소리가 적지않음을 주시해야 한다.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된다고 하더라도 다수당의 횡포라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은 국민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만을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방탄국회의 오명을 벗지 못한다면 정치권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법과 원칙을 지키려는 검찰을 좌절케 하는 것이다. 온 국민이 기대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도움이 절실한 이 시점에 정치권이 검찰 길들이기로 맞서서는 안된다. 만약 국회만 열어놓고 체포동의안도 상정하지 않으면서 북핵과 정치개혁 문제에서부터 주5일 근무제, 노사문제, 실업-신용불량자 문제까지 산적한 민생현안도 건드리지 않은 채 마음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지역구에 가 있다면 '방탄국회'라는 여론의 비난을 면키 어렵다. 임시국회 소집이 자신의 일일 수도 있다는 동병상련의 발로라는 의혹을 받아 마땅하다. 이 모든 불신과 의혹을 떨쳐버리고 정당의 대표기관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을 자임하려면 이번 여름엔 과감하게 방탄조끼를 벗어던져라. 그래야 국민도, 검찰도, 국회의원 스스로도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을 것이다. 河泰勳 (고려대 법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8. 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