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을 끝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야말로 ‘살고 싶은 나라’이다. 우리가 원하는 2020년 한국은 ‘힘 센 나라’보다 ‘매력 있는 나라’이고 ‘돈이 많은 나라’보다 ‘꿈이 있는 나라’여야 한다. 그것은 일과 놀이의 벽이 무너지고 교육과 놀이가 하나 되는 사회이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팀은 문화강국 건설을 위한 두 번째 실천대안으로 ‘신바람 나는 일놀이 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우리에겐 ‘일 문화’와 ‘놀이 문화’는 있어도 ‘일놀이 문화’가 없다. ‘일 문화’는 딱딱하고 격식에 얽매여 있는 데 반해 ‘놀이 문화’는 소비적이고 자극적이다. 이제 일과 놀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신명나는 ‘일놀이 문화’가 필요하다. 이른바 ‘워크테인먼트(Work+Entertainment) 문화’의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일 문화’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연초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KBS와 함께 실시한 ‘한국인의 직장만족도’ 설문조사는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일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10명 중 4명 남짓, 근무환경에 만족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 보수와 인사체제에 만족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 평균해 볼 때 ‘만족하며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셈이다. 우리의 직장만족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이런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일 문화’ 속에서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러면 신명나는 일 놀이 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기획위원들은 우선 ‘나인투 파이브(Nine To Five)’로 상징되는 산업사회의 ‘대량생산형 근무시스템’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을 ‘공간’과 ‘시간’적 제약에서 해방시켜 탄력성 있는 디지털 시대의 근무환경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미 일본 등 선진국에선 ‘프리터(Free+Arbeiter)’란 이름의 미래형 자유직업군(群)이 생겨나고 있다.
일에 대한 귀천(貴賤)의식도 버려야 한다. ‘고급’과 ‘저급’, ‘전문’과 ‘단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구분하는 종적인 서열의식 속에선 신명나는 일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근무형태도 10명 이내 소그룹이나 목표가 분명한 TF(task
force)형 조직을 활성화하자. 그리고 ‘한 번 비판에 아홉 번 칭찬’, ‘유머감각’, ‘남의 일과 여가를 존중하는 자세’를 실천하자. 미래형 일 놀이 문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李濬기자 junlee@chosun.com )
[미래로 가자] ‘신바람나는 일놀이 문화’ 대담
‘취미=직업’되는 아마페셔널 시대 곧 온다
그들의 직업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김갑수(金甲洙·43), 국문학 전공자인 그는 시인이자 음악칼럼니스트 겸 출판평론가이면서 방송진행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섭(42), ‘에로스 훔쳐보기’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전시기획자 겸 일주아트하우스 큐레이터이며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회학도. 안이영노(安李英老·36)는 축제와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애니메이터다. 이들은 김형수(金炯秀)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2020기획위원)의 사회로 일과 놀이를 주제로 대담했다.
▲김형수=미래직업으로 일과 놀이가 통합된 아마페셔널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진단이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이분법이 사라진다는 뜻인데….
▲안이영노=분명히 해둘 점은 아마추어는 문외한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아마와 프로를 엄격하게 나눈 것은 근대분업적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삶의 권리 중 하나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김갑수=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은 모두의 꿈이다. 내 경우에는 음악과 책이 그것이다. 음악칼럼니스트와 출판평론가라는 직함은 그 때문에 얻었다. 그러나 아직은 굉장히 고통스럽다. 삶의 의미를 위해 나의 많은 것을 보상 없이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만족감이 크다. 일할 때 미친 듯이 몰두하고, 쉴 때는 거의 시체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섭=일과 놀이를 함께 하면 만족감은 높지만 생산성은 낮다. 아직은 멀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지금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니 생산성이 떨어져도 버티는 수준이다.
▲김형수=사실 사람들은 행복으로 가는 처방은 알고 있다. 실행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각자가 이에 대해 갖고 있는 노하우를 소개해 줄 수 있겠나?
▲김갑수=우선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덜 맺고 살자는 주의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 ‘하지 말자’를 실천하고 있다. 첫째 신문 읽지 말자, 둘째 TV 보지 말자, 셋째 저녁에 약속하지 말자. 이를 할 수 있어야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안이영노=난 경제적으로 조금 초라해도 좋다는 각오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부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일과 놀이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김형수=문화나 예술을 돈과 관련해서만 평가하려는 풍조가 요즘 강하다.
▲안이영노=예술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 우리 사회도 일정한 합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에야 ‘예술은 무슨 얼어죽을’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시장원리에만 맡겨 놓으면 돈되는 예술만 살아남고 꼭 필요한 예술은 죽을 수 있다.
▲김갑수=난 좀 다른 의미에서 20대80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80%가 생산에 종사해 20% 중 10%의 능력없는 사람과 10%의 뛰어난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섭=예술가들 중에서 돈의 유혹에 굴복한 이들이 적지않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예술가적이지 못하고 이른바 월급쟁이들과 똑같다.
▲김형수=일과 놀이가 통합된 사회가 절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할 텐데.
▲이섭=그것은 요즘 영화쪽 중심의 인디(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언더건 인디건 그 자체로 존속을 추구해야 하는데 늘 시선은 중심에 있었다.
▲김갑수=난 오히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극단적 사고가 문제라고 본다. 인디를 하면서 상업영화도 할 수 있는 거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나는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우리나라 시민단체나 봉사단체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욕이나 먹는다.
▲김형수=일과 놀이가 통합된 사회로 가는데 정부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
▲안이영노=문화쪽은 90년대 들어 비교적 정부가 방향을 잘 잡아서 끌고 왔다. 문화산업의 필요성에 눈떠 ‘수용자 중심 문화’란 개념을 도입했고 문화 기반시설도 꾸준히 확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내 생활은 변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섭=공교육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예술은 학습이 아니다. 예술과 같은 감성교육은 체험을 통한 교육(learning by doing)이 중요하다. 학교는 아이들을 최소한 자발적 아마추어 수준까지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 정리=李翰雨기자 hwlee@chosun.com )
[미래로 가자] 각자 신나는 일 할때 선진국 앞당겨
일과 놀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를 앞당길수록 우리의 미래는 밝다.
대부분 우리에게 ‘일’이란 너무 심각하다. 우리는 너무 ‘죽자 사자’ 일을 한다. 이런 우리에게 ‘놀이’ 역시 그리 쉽지 않다. ‘잘 놀기’란 ‘일 잘하기’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과제다.
변화하는 세계. 일 종류는 많아지고, 직업의 생명은 짧아진다. 직업보다는 직능이 우선되고 일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평생 적어도 세 번 일자리를 바꾸어야 하고,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백수(百壽) 시대’가 온다.
‘돈’의 잣대로만 보면 변화하는 세계의 삶은 삭막하다. ‘20대80의 세계’에서 어떻게 20에 들어갈 것인지 신경쓰다 짧은 인생은 속절없이 끝나버린다. ‘돈 벌기’가 일의 지상과제라면 일의 재미가 없어지고 ‘돈 쓰기’가 놀이의 지상과제라면 놀이도 금세 싫증난다.
신나는 일 놀이 문화의 창조를 위해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절실하고 사회로서도 절실한 과제다. 일에 매이고 술에 찌든 한국 남자, 무의미한 일상에 지치고 남의 입에 치인 한국 여자. 이들에게서 삶의 질과 경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마불사’ ‘상의하달’ ‘일사불란’ 같은 고루한 개념도 이제 던져 버리자. 어떻게 하면 일 자체에 흥미와 재미를 녹여서 ‘일놀이’로 만드느냐, 반대로 놀이의 흥미와 재미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느냐, 이것은 문화 과제이자 경제 과제다.
일놀이 문화의 요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정부 관료, 공기업, 대기업, 학교, 연구소, 중소기업, 군대, 미디어, 식당, 구멍가게, 정치계 어느 자리에서나 한번쯤 일놀이 패턴을 돌아보자. 돈과 관련 없이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고정관념 때문에 못하는 것은 아닌지. ‘놀이 중독자’도 아니고 ‘일 중독자’도 아닌, 일 맛과 살 맛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이야말로 2020형 인간형이다.
[미래로 가자] 일과 놀이가 하나되는 문화를
재미없는 일터에서는 생산성 기대못해
‘야, 오늘도 신나게 놀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야말로 ‘살고 싶은 나라’이다. 우리가 원하는 2020년 한국은 ‘힘 센 나라’보다 ‘매력 있는 나라’이고 ‘돈이 많은 나라’보다 ‘꿈이 있는 나라’여야 한다. 그것은 일과 놀이의 벽이 무너지고 교육과 놀이가 하나 되는 사회이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팀은 문화강국 건설을 위한 두 번째 실천대안으로 ‘신바람 나는 일놀이 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우리에겐 ‘일 문화’와 ‘놀이 문화’는 있어도 ‘일놀이 문화’가 없다. ‘일 문화’는 딱딱하고 격식에 얽매여 있는 데 반해 ‘놀이 문화’는 소비적이고 자극적이다. 이제 일과 놀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신명나는 ‘일놀이 문화’가 필요하다. 이른바 ‘워크테인먼트(Work+Entertainment) 문화’의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일 문화’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연초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KBS와 함께 실시한 ‘한국인의 직장만족도’ 설문조사는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일에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10명 중 4명 남짓, 근무환경에 만족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 보수와 인사체제에 만족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 평균해 볼 때 ‘만족하며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셈이다. 우리의 직장만족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이런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일 문화’ 속에서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러면 신명나는 일 놀이 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기획위원들은 우선 ‘나인투 파이브(Nine To Five)’로 상징되는 산업사회의 ‘대량생산형 근무시스템’을 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을 ‘공간’과 ‘시간’적 제약에서 해방시켜 탄력성 있는 디지털 시대의 근무환경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미 일본 등 선진국에선 ‘프리터(Free+Arbeiter)’란 이름의 미래형 자유직업군(群)이 생겨나고 있다.
일에 대한 귀천(貴賤)의식도 버려야 한다. ‘고급’과 ‘저급’, ‘전문’과 ‘단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구분하는 종적인 서열의식 속에선 신명나는 일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근무형태도 10명 이내 소그룹이나 목표가 분명한 TF(task force)형 조직을 활성화하자. 그리고 ‘한 번 비판에 아홉 번 칭찬’, ‘유머감각’, ‘남의 일과 여가를 존중하는 자세’를 실천하자. 미래형 일 놀이 문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 李濬기자 junlee@chosun.com )
[미래로 가자] ‘신바람나는 일놀이 문화’ 대담
‘취미=직업’되는 아마페셔널 시대 곧 온다
그들의 직업은 사람들에게 문화의 향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김갑수(金甲洙·43), 국문학 전공자인 그는 시인이자 음악칼럼니스트 겸 출판평론가이면서 방송진행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섭(42), ‘에로스 훔쳐보기’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전시기획자 겸 일주아트하우스 큐레이터이며 화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회학도. 안이영노(安李英老·36)는 축제와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애니메이터다. 이들은 김형수(金炯秀)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2020기획위원)의 사회로 일과 놀이를 주제로 대담했다.
▲김형수=미래직업으로 일과 놀이가 통합된 아마페셔널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진단이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이분법이 사라진다는 뜻인데….
▲안이영노=분명히 해둘 점은 아마추어는 문외한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아마와 프로를 엄격하게 나눈 것은 근대분업적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삶의 권리 중 하나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김갑수=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은 모두의 꿈이다. 내 경우에는 음악과 책이 그것이다. 음악칼럼니스트와 출판평론가라는 직함은 그 때문에 얻었다. 그러나 아직은 굉장히 고통스럽다. 삶의 의미를 위해 나의 많은 것을 보상 없이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만족감이 크다. 일할 때 미친 듯이 몰두하고, 쉴 때는 거의 시체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섭=일과 놀이를 함께 하면 만족감은 높지만 생산성은 낮다. 아직은 멀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지금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있으니 생산성이 떨어져도 버티는 수준이다.
▲김형수=사실 사람들은 행복으로 가는 처방은 알고 있다. 실행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각자가 이에 대해 갖고 있는 노하우를 소개해 줄 수 있겠나?
▲김갑수=우선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덜 맺고 살자는 주의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 ‘하지 말자’를 실천하고 있다. 첫째 신문 읽지 말자, 둘째 TV 보지 말자, 셋째 저녁에 약속하지 말자. 이를 할 수 있어야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안이영노=난 경제적으로 조금 초라해도 좋다는 각오에서 출발한다. 때로는 부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지만 일과 놀이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김형수=문화나 예술을 돈과 관련해서만 평가하려는 풍조가 요즘 강하다.
▲안이영노=예술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 우리 사회도 일정한 합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에야 ‘예술은 무슨 얼어죽을’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시장원리에만 맡겨 놓으면 돈되는 예술만 살아남고 꼭 필요한 예술은 죽을 수 있다.
▲김갑수=난 좀 다른 의미에서 20대80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80%가 생산에 종사해 20% 중 10%의 능력없는 사람과 10%의 뛰어난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섭=예술가들 중에서 돈의 유혹에 굴복한 이들이 적지않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예술가적이지 못하고 이른바 월급쟁이들과 똑같다.
▲김형수=일과 놀이가 통합된 사회가 절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져야 할 텐데.
▲이섭=그것은 요즘 영화쪽 중심의 인디(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언더건 인디건 그 자체로 존속을 추구해야 하는데 늘 시선은 중심에 있었다.
▲김갑수=난 오히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극단적 사고가 문제라고 본다. 인디를 하면서 상업영화도 할 수 있는 거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나는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우리나라 시민단체나 봉사단체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욕이나 먹는다.
▲김형수=일과 놀이가 통합된 사회로 가는데 정부의 역할은 뭐라고 보나?
▲안이영노=문화쪽은 90년대 들어 비교적 정부가 방향을 잘 잡아서 끌고 왔다. 문화산업의 필요성에 눈떠 ‘수용자 중심 문화’란 개념을 도입했고 문화 기반시설도 꾸준히 확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내 생활은 변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섭=공교육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예술은 학습이 아니다. 예술과 같은 감성교육은 체험을 통한 교육(learning by doing)이 중요하다. 학교는 아이들을 최소한 자발적 아마추어 수준까지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 정리=李翰雨기자 hwlee@chosun.com )
[미래로 가자] 각자 신나는 일 할때 선진국 앞당겨
대부분 우리에게 ‘일’이란 너무 심각하다. 우리는 너무 ‘죽자 사자’ 일을 한다. 이런 우리에게 ‘놀이’ 역시 그리 쉽지 않다. ‘잘 놀기’란 ‘일 잘하기’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과제다.
변화하는 세계. 일 종류는 많아지고, 직업의 생명은 짧아진다. 직업보다는 직능이 우선되고 일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평생 적어도 세 번 일자리를 바꾸어야 하고,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백수(百壽) 시대’가 온다.
‘돈’의 잣대로만 보면 변화하는 세계의 삶은 삭막하다. ‘20대80의 세계’에서 어떻게 20에 들어갈 것인지 신경쓰다 짧은 인생은 속절없이 끝나버린다. ‘돈 벌기’가 일의 지상과제라면 일의 재미가 없어지고 ‘돈 쓰기’가 놀이의 지상과제라면 놀이도 금세 싫증난다.
신나는 일 놀이 문화의 창조를 위해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절실하고 사회로서도 절실한 과제다. 일에 매이고 술에 찌든 한국 남자, 무의미한 일상에 지치고 남의 입에 치인 한국 여자. 이들에게서 삶의 질과 경쟁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마불사’ ‘상의하달’ ‘일사불란’ 같은 고루한 개념도 이제 던져 버리자. 어떻게 하면 일 자체에 흥미와 재미를 녹여서 ‘일놀이’로 만드느냐, 반대로 놀이의 흥미와 재미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느냐, 이것은 문화 과제이자 경제 과제다.
일놀이 문화의 요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정부 관료, 공기업, 대기업, 학교, 연구소, 중소기업, 군대, 미디어, 식당, 구멍가게, 정치계 어느 자리에서나 한번쯤 일놀이 패턴을 돌아보자. 돈과 관련 없이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고정관념 때문에 못하는 것은 아닌지. ‘놀이 중독자’도 아니고 ‘일 중독자’도 아닌, 일 맛과 살 맛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이야말로 2020형 인간형이다.
( 金鎭愛 서울포럼 대표·2020기획위원 jinaikim@seoulforum.co.kr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4 '2002 미래로 가자'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