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제도가 변해야 한다
2002-02-27

은행제도가 변해야 한다  

은행제도가 변화하지 않고는 일용품이나 대주는 국제적 常民 신분을 벗어날 수 없다.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을 관찰한 많은 학자들은 여러 나라의 성장의 결과가 수렴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 놓은 개념이 상대적 수렴가설이다. 비유하자면, 한 가족의 키는 가족 내의 평균 크기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키 큰 유전자를 가진 가족과 키가 작은 유전자를 가진 가족 사이의 평균키는 좀처럼 수렴하지 않는다. 이것을 달톤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경제위기 이후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시행해 오고 있지만 지지부진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것만 완성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처럼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 외국은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스스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그 차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 수렴가설에 제물이 될 것인가. 나는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 좋은 한 예가 은행제도이다. 엊그제 은행법을 새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세계의 대세에 비추어 보면 어림없다.

산업구조가 바뀌는 순서를 보면,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손쉬운 수렵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이 농업이었다. 그 후에 농업보다 과학과 기술이 더 필요한 공업이 주요산업으로 등장했다. 일본은 공업국가로 세계를 제패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기술을 요구하는 금융이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었던 점을 간과했다. 일본은 10여 년 전만 해도 자동차, 냉장고, 전자제품, 철강 등으로 미국 시장을 석권했다.

일본 땅을 팔면 미국 땅을 살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 일본이 금융제도의 후진성으로 무릎을 꿇었다. 옛날에 양반이 쓰던 일상용품은 상민이 만들었다. 양반은 정치, 학문, 문학을 즐겼다. 세상은 바뀌어서 일본은 미국이 쓰는 일상용품을 만들어 주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신 미국은 정치, 군사, 금융을 즐긴다. 국제적인 상민과 양반으로 나뉘어진 꼴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금융제도를 확 뜯어고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일본형을 답습한 후발 開途國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금융부문에서 6대 규제를 고수해 왔다. 재미있는 관찰은 일본과 독일이 공히 후발 공업국가로 선발 공업국가인 영국을 따라 잡기 위해 금융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막대한 공업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은 은행이 거대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 지난 150년 동안 독일 정부는 은행에 대해서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본은 은행을 정부가 심하게 간섭했다. 은행을 내버려두면 경제가 불안정하게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150년이 지난 오늘날 두 나라는 은행제도의 차이로 경제력의 차이가 생겨나고 그것은 점점 벌어지게 되었다. 은행을 내버려두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 국가는 스코틀랜드이다. 은행 설립은 완전 자유였고, 각 은행은 독자적인 은행권을 발행하여 유통시킬 수 있었다. 지점설립이 자유로웠던 것은 물론이고, 은행의 업무에도 전혀 제약이 없었다. 설립 자본금의 제약도 없었고, 단지 무한책임 회사였다는 데에 그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은행제도의 박물관이며 전시장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연방차원에서, 그리고 州차원에서 온갖 은행제도를 실험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실험의 결과 자유은행제도가 효율적이며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지난 200여 년 동안 발전되어 온 각국의 금융제도는 크게 스코틀랜드형, 독일형, 미국형, 일본형의 네 가지이다. 이 분류는 대체로 규제의 정도에 따른 것이다. 스코트랜드 제도는 완전 자유시장 금융제도laissez-faire banking의 전형이고, 독일형은 은행에 모든 업무를 자유롭게 허락한 대은행 제도universal banking인데 대하여, 미국은 1933년이래 비교적 최근까지 예금업무를 투자업무와 구별하여 규제하여 온 단일점포unit banking 원칙의 제도였다. 일본형은 금리규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규제regulatory banking를 시행했다.

미국은 비교금융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예외에 속한다. 그러나 1999년 미국의회가 역사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그 예외성은 역사에 묻혔다. 1933년이래 유지되어 온 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의 구별을 철폐하고 예금은행이 채권과 주식을 인수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그 이전인 1987년에 이미 연방준비제도는 은행에 대한 인수업무 금지를 풀어 주었다. 연방준비제도는 1994년에 예금은행의 단일점포제도를 철폐하고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1997년에 연방준비제도는 은행지주회사의 은행과 비은행회사 사이의 내화벽firewall 을 제거했다. 이 모든 것은 금융의 국제화 때문에 미국 국내의 규제가 더 이상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형 은행제도로 크게 선회한 미국에 앞서서 유럽연합EU은 이미 시장통합에 따라 유럽연합의 통일된 은행면허가 생겨나 은행과 증권회사의 기능이 합쳐진 독일형의 종합금융회사가 각국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의 대표적 종합금융회사인 도이체방크Deutche Bank는 영국의 모건글렌펠Morgan Grenfell을 인수했고, 홍콩의 상하이은행은 영국의 미들랜드은행Midland Bank을 매입했다. 불란서의 파리국립은행Banque Nationale de Paris도 영국의 크라인워스벤슨Kleinworth Benson과 투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수많은 은행들 사이에 인수 합병이 일어났다(Buschgen 1995).

독일은 지난 150년 동안 시종일관 大은행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불란서가 초기에 독일과 함께 대은행 제도로 발전했으나 19세기 후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방향을 수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 위기와 시련을 겪으면서 그 때마다 재발하는 논쟁에서도 독일은 한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특히 2차 대전으로 연합국에 의해 대은행이 해체 분리되는 와중에서도 대은행 제도는 다시 살아났다.

전세계는 본격적으로 독일형의 글로벌 은행제도로 수렴해 가고 있다. 글로벌 은행제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금융상품의 개발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可分性divisibility의 문제이다. 상품의 가분성은 시장의 경쟁상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금융상품의 가분을 통해 실물상품을 분할 소유할 수 있게 되고, 이로써 시장의 경쟁상태를 높이게 된 것이다. 더욱이 가분성은 가분할 수 없는 실물상품을 가분하여 소유할 수 있으므로 소득분배에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이 금융의 소득배분income sharing 기능이다. 글로벌 금융제도가 경쟁적이 되고, 소득배분에 기여하려면 금융제도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다양한 금융상품이 경제에 주는 정보 때문이다. 금융상품의 이 같은 기능이 가격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이다. 특히 파생상품은 원 상품의 가격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데, 정확한 가격정보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위험성을 감소시키므로, 이러한 방향으로 금융제도가 발전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글로벌 은행제도의 수렴의 목표는 효율성의 극대화이지만 이것은 경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반드시 금융업무 경쟁에 따른 안정성의 확보 문제가 대두된다. 지금까지 각국이 자국의 형편에 맞도록 금융제도를 발전시키는 데 가장 염두에 둔 것이 금융제도의 효율성보다는 안정성이었다.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효율성은 기꺼이 혹은 마지못해 희생하여 왔다. 경제에서 금융시장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마지막 분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효율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국제 경쟁시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안정성의 문제가 다시 도전을 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제압하여 소위 금융독점자본주의가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힐퍼딩R. Hilferding이다. 그는 이미 100여 년 전 그와 같은 생각을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아주 환영했다. 힐퍼딩은 그 이유로서 1905년 대기업가 자이델Jeidells이 주장한 인적 연고interpersonal relation를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이미 동시대 인물인 리서Riesser에게서 도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후 100여 년 동안 검정의 대상이 되었다.

간단한 관찰에 의존해 보아도, 당시 大은행가인 게오르그 지멘스Georg Siemens, 폰 한제만von Hansemann, 프르스텐버그Furstenberg 등은 분명히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었지만, 대기업가인 알프레드 쿠룹Alfred Krupp, 라데나우Rathenau, 스티네스Stinnes, 티센Thyssen 등도 그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大은행이 산업을 지배했다는 주장을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드는 측면이다.

1952년 거센크론Gerschenkron이 힐퍼딩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자본이 부족한 초기 단계에는 大은행이 산업을 지배master-servant relationship하겠으나 그 후에는 대등한 위치partnership between equals에 서게 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그 후의 실증 연구들은 산업화 후기에는 물론이고 초기에도 大은행이 산업을 지배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1883∼1914년 기간의 도이체방크와 전기산업의 관계를 연구한 뉴버거Neuburger, 1883에서 191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산업성장을 연구한 뉴버거와 스톡스, 1880∼1913년 동안의 대기업과 대은행의 관계를 연구한 틸리Tilly, 지멘스와 만네만을 연구한 코카Kocka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독일형의 은행제도를 옹호하는 이론의 근거는 슘페터Schumpeter다. 대은행이 산업을 공급선도supply-leading해야 한다는 그의 이론은 그 후에 그에 대립하는 것으로 등장한, 산업발전에 은행이 수동적으로 추종demand-following한다는 수요추종이론과 대조되는데, 보덴호른Bodenhorn은 슘페터의 공급선도이론이 19세기 전반기 미국의 은행제도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급선도이론과 병행하여 대은행제도를 옹호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은행학파Banking School다. 이 이론은 통화학파Currency School와 대립된다. 통화학파는 화폐량을 중시하고 그 크기는 외생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은행제도는 실물경제에 대하여 중립적이며 물가는 외생적으로 결정되는 화폐량에 의해 결정되고, 자본시장은 효율적이므로 모든 정보는 여기에서 표현되어 은행의 역할은 중립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은행학파는 화폐량보다는 신용량을 중시하고 그 크기는 내생적으로 결정되므로 은행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본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비해 신용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최근 20년 동안 미국은행의 합병과 인수를 통해서 대은행이 출현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딤스키Dymski는 그 현상을 은행학파의 입장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미국은 독일과 달리 역사에서 다양한 금융제도를 경험한 매우 드문 국가이므로, 과거 경험에 비추어 슘페터 이론으로 독일형 금융제도를 옹호하는 연구들이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19세기초 자유은행제도, 자유허가제도, 광범위 지점제도를 선별적으로 채택한 메사츄세츠州, 뉴욕州, 버지니아州는 대은행이 산업을 선도해갔고, 금융억압을 실시한 펜실바니아州, 뉴올리언즈州는 금융과 산업이 모두 곤란을 겪었다는 실증분석이 그 한 예이다.

로드아일랜드州의 은행들은 진성어음주의real bills doctrine를 믿고 기업에게 고정자본보다는 운영자본을 빌려주었다. 이것은 독일은행과 반대되는 은행철학이다. 독일은행이 기업을 통하여 대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에게 운영자본뿐만 아니라 막대한 고정자본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 기업가들은 은행에 대한 고정자본 공급을 요청할 필요가 없었고 대신 계속적인 운영자본의 확보만이 절실했는데, 그 확실한 방법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이 가설은 라모로Lamoreaux에 의해 검정되었다. 지배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고정자본과 운영자본의 역할은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와서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서 대규모 은행합병이 일어났다. 1981∼97년까지 합병을 통해 매일 1.7개의 은행이 사라졌고, 그 결과 25개의 대은행이 출현하여 1996년에는 전체 자산의 33퍼센트를 차지하던 것에서 70퍼센트로 끌어 올렸다. 합병은 계속되어 앞으로 10년 안에 85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것은 확실히 미국 금융제도의 글로벌화를 의미한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가 전통적으로 합병을 규제하던 것을 대폭적으로 수정한 것도 힘이 되었다. 대은행의 출현은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효율성 제고이고 둘째는 위험성 감소이다.

효율성 제고의 효과는 탄넨왈드Tannenwald에 의해 검토되었다. 대은행의 출현은 마침 전자기술과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지점망을 넘어서는 은행시장의 영역을 넓혀 주었다. 크로즈너Krozner와 스트라한Strahan은 전통적인 지점 제한 규제가 소규모 은행의 비효율적 운영에 이용되어 왔음을 발견했다. 소규모 은행들은 규제를 옹호하는 계속적인 로비활동으로 지대추구를 하고 있었다.

위험성 감소의 효과는 1980년대 도덕적 해이 또는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으로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s association이 지급불능 위기에 몰린 것을 관찰한 은행들에게서 비롯한다. 은행들은 은행을 증권시장에 노출시키는 방법만이 도덕적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시기에 은행의 수익률은 浮沈이 심하여 위험이 커져갔다. 은행합병은 증권시장에 두 가지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은행의 주식가치를 올려 주었고, 다른 하나는 경영진의 몫을 상승시켰다. 그 결과 1993년이래 대은행의 위험이 감소하고 있음이 관찰된다.

독일형의 글로벌 은행제도는 효율성과 안전성에서 뛰어나며, 산업을 지배할 염려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나라 은행제도가 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일본형을 그대로 베낀 우리 나라는 은행제도를 그렇게 확 뜯어고칠 용기도 기백도 없다. 공업부문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해도 금융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일본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교훈이 아니라 경보다.

더욱이 일본의 공업력은 우리 보다 몇 배 더 높은 데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절절 매는 것을 보면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끝내 좌절할 것이다. 실제로 같은 서울 하늘에서 영업을 하는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수익률은 우리 나라 은행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글로벌 은행 시대에 서울은 모두 외국은행의 돈벌이 시장이 될 것이다.

김학은 / 연세대 교수. 경제학.

 emerge 2001.11월 호에 실린 글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