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자세
	2003-04-21
공직자의 자세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SK그룹에 압력을 행사하여 자신이 다니는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하게 했다고 하여 제3자 뇌물수수죄로 구속되었다. 이 죄목 외에도 이 전 위원장은 SK로부터 해외출장시 여비조로 2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도록 부탁했다고 과연 이번과 같은 죄목을 적용해 사법처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법원에서 유죄판결날까하는 의구심이 있고 해외출장 여비 수수도 대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유죄가 선고될까하는 의구심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구차한 변명을 떠나 경제검찰 총수라고 하는 사람이 일,이천만원도 아니고 10억원이라는 큰 돈을 자신이 감시해야 할 대상 기업으로 하여금 자신이 다니는 절에 시주하기를 요구했다면 이것은 누가 보아도 부당한 압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들에 대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시주를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그래서 이 경우는 나중에 설령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다 할지라도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는 부적절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2만달러 해외출장비 보조도 과거 어느 여성 환경부장관이 기업인들로부터 연극공연단을 위한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경질된 예를 보더라도 부적절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현재 이 전 위원장은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대가성이 없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SK텔레콤의 KT지분 매입으로 기업결합심사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 SK구조조정본부장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SK텔레콤의 KT지분 확보가 과다함을 지적하면서 사찰 시주를 요구했고 더욱이 약속한 시주가 즉각 이루어지지 않자 시주를 독촉했다는 검찰의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부당압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들의 불공정행위를 감시-감독하고 위법 사실이 밝혀질 경우 과징금 부과, 위반행위 중지명령 등 시정조치를 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에 고발하는, 기업들에게는 매우 막강한 정부조직이다. 따라서 기업에 대해 이러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나 그 조직의 장은 모든 기업에 대해 추호의 의심을 살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고 아무리 관행이라고 하여도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정한 뇌물에 해당될 금품의 수수를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던 조직의 장들이 부정이나 권력남용으로 구속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정거래위원장이 구속됐고 전임 국정원장과 비서실장도 대북송금사건 관련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권력기관의 장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의 목적이나 범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권한과 권력을 혼동한 데 연유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우리 민주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주어진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우리 국민과 언론에 의해 엄중한 감시 대상이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4. 2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