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장 개방은 기회다
2003-04-07
교육시장 개방은 기회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고등교육과 성인교육 부문을 개방키로 했다. 설령 교육시장 개방 양허안 제출을 "교육 주권을 짓밟는 21세기판 을사조약 같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주무 장관인 교육부총리를 '참여정부의 이완용'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말도 안된다. 외국분교 진출 일본에선 참패 교육시장을 닫아놓는다 해도 교육 이민의 절규가 없어지거나 외국 유학이 감소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과 같은 공교육의 붕괴는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대학시장을 개방해도 우리나라에 들어올 외국의 유명 대학은 별로 없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에 학교시설이나 투자하라는 식의 조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외국 일류 대학의 등록금은 국내 대학의 등록금 수준에 비해 엄청 비싸기 때문이다. 등록금의 경쟁력이 훨씬 떨어지는 외국 명문 대학일수록 우리 시장에 식상한 지 이미 오래됐다. 경영학 석사(MBA) 같은 것이 아직도 국내 시장을 넘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시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프로그램에 오히려 국내 기업들이 더 관심을 갖고 있지만 요즘은 원격 교육을 병용하는 추세이기에 그들이 굳이 한국의 가시밭길에 들어올 리 없다. 교육시장 개방이 지방 대학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주장도 지나치다. 일본의 대학교육 시장 개방 사례가 그것을 증거한다. 분교 형태로 20여개의 외국 대학이 일본 교육시장에 진출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거나 일본의 교육 주권 침탈에 성공한 외국 분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그들은 유명무실하게 하나 둘씩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 국민의 교육 수준을 얕잡아 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곤란하다. 교육시장에서 잠식이 우려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사교육 부문일 수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외국어 교육 시장이나 학습지 시장이 취약하다고 불안해 한다. 실정 모르는 빈 소리다.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부문이다. 공교육이 그들의 생존 방법과 구조조정력을 오히려 본받아야 할 정도로 그들은 야물다. 외국어 교육 시장은 우루과이 라운드의 교육시장 개방 때 이미 준비를 끝냈다. 정부 지원 없이도 그들 스스로 살을 도려내듯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들은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교육프로그램 개발로 그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학습지 시장은 아예 우리가 저들을 가르쳐 줄 정도로 앞서 가는 중이다. 교육시장 개방은 우리 교육의 세계화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최신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통용되려면 남들보다 앞서 표준화에 성공해야 한다. 표준화에 뒤처지면 세계시장 진출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교직도, 교육 행정도, 교육 프로그램도 세계 표준화에 약하다. 정부는 이제부터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표준화된 교육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교육의 문제는 교육시장 개방과 성격이 다른 별개의 사안이다. 공교육의 문제는 교육시장 개방과는 질적으로 다른 특수한 접근과 처방을 필요로 한다. 그 현실이 우리에게는 암울하지만 반대로 외국에는 희망의 목소리일 수 있는, 외국이 본받았으면 하는 우수한 부문들이 우리 교육에도 여럿 있다. 파급효과 최적화 모색해야 우리나라가 2년 전 교육시장 개방을 약속하면서 정부는 중국.일본 등 11개 나라에 같은 요구를 했다. 그 요청은 정부가 우리 교육의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야심에 찬, 계산된 정책 결정이었을 것이다. 지금 미국.뉴질랜드.호주 등 10개국이 동양의학ㆍ교육 테스팅 서비스ㆍ학생 알선 등 모든 교육 분야에 양허를 요구하는데, 우리도 저들에게 치밀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교육시장 개방의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교육시장 개방은 대세에 밀려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개방을 뒤집으면 국가 신뢰도가 추락하겠기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교육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줄 것 같아 시장개방을 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정은 정반대다. 정부는 교육시장 개방 파급 효과의 최소화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교육 선진국처럼 그 파급 효과를 최적화해야 한다. 韓駿相 (연세대 교육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3. 3. 3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