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조건  

경쟁제도를 정의와 윤리의 측면에서 평가하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나는 86년 미국 農務省을 방문하는 기회에 그들이 세계 무역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70년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그러한 변화를 감지 못한 한국은 10년 후에 경제위기를 당하였다. 이번뿐만 아니다. 과거에도 세계 대세에 吾不關焉으로 모른 척 하다가 국난을 당한 적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세계가 급변할 때 그에 대한 감지 체제가 부족하던가, 알아도 애써 그에 저항하는 듯 하다. 작은 나라가 세계 대세에 저항한다고 될 일인가. 그런 면에서 오늘날 세계가 지향하는 목표가 어디인지를 경제학설사를 통해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출범시킨 이후 스미스A. Smith를 비롯한 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출현하게 되었다. 19세기 중엽까지 私기업제도는 그 효율성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자연상태의 자유의 개념이 널리 퍼져갔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정부에 대해서 되도록 개인의 행동을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맬더스T. Malthus는 평등에 대해 코웃음쳤고 리카르도D. Ricardo는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의 평등사회 실험을 비웃었다.

한편 점점 증폭되는 사회적 갈등 때문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사기업제도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제본스Jevons, 마샬Marshall, 케인즈(아버지)J. N. Keynes 등도 독점, 외부경제 등의 이유로 자유시장제도에 대해서 약간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한계생산이론의 발견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이 이론은 분배문제를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에 대한 확신이 바로 서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쳐 당시 분배이론을 완성한 존 베이츠 클라크John Bates Clark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계생산에 의해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롭고 또 윤리적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프랑크 나이트Frank Knight는 〈경쟁의 윤리〉라는 유명한 글에서 경쟁제도가 정의롭고 윤리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반어법으로 반박하였다. 첫째, 모든 경제제도는 나름대로 사람들의 선호를 형성하는데 역할을 하므로 스스로 그 경제제도가 좋다고 옹호할 수 없다. 마치 내가 착하다는 것을 내가 증명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둘째, 경쟁제도는 현재 완전하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셋째, 경쟁제도의 결정적인 단점은 분배가 노력이나 능력 보다 유산이나 운에 의해서 크게 결정된다. 경쟁제도는 분배의 不平等度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넷째, 경쟁제도에서는 각자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 한 마디로 경쟁제도를 정의와 윤리의 측면에서 옹호하는 태도를 경계한 글이다.

경쟁제도는 현재의 시장제도가 얼마나 불완전 경쟁인지를 알기 위해서 내세운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 자유를 신장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경쟁제도의 최대의 가치는 자유의 보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윤리적 판단이 介在할 이유도 없고 정의관으로 옹호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나이트의 요점이다. 나이트의 제자인 스티글러G. Stigler는 어떤 윤리관이 사회적 가치와 충돌하면 그 윤리관을 버리라고 주장하면서 경쟁보다 효율을 더 강조한다. 따라서 때에 따라 독점이 더 효율적이라면 그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효율은 대부분 경쟁제도 하에서 提高된다. 그래서 경쟁을 옹호한다. 불완전 경쟁을 측정하기 위해 내세운 경쟁의 조건을 찾고 그 조건을 현실에서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20세기 경제학자의 몫이 되었다.

첫째 조건은 독점을 억제하는 조건으로 경쟁에 필수적이다. 이 조건이 내포하는 의미는 대단히 큰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경쟁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자원의 지배권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미래도 이 점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독점은 많은 경우에 그 유지비용으로 인해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둘째 조건인 진입과 퇴출의 자유가 눈에 띠게 허용된 분야는 항공산업과 금융산업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싼값으로 해외여행을 즐기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70년대 초 보스턴의 조그만 저축회사가 은행이 할 수 있는 업무를 자신은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違憲소송을 관철시키면서 금융산업도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되었다. 진입을 인위적으로 방해하는 모든 것을 철폐해야 한다. 심지어 인허가제도, 면허제도까지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이다. 여기에서 규제철폐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규제라는 것을 특정한 이익집단이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정부와 결탁하여 얻어낸 결과물로 보는 포획설capture theory이 설득력을 얻는다. 다시 말하면 규제는 정부가 만들어 내는 상품으로, 정부는 규제의 공급자이고 이것을 가장 비싼 가격을 부르는 수요자에게 파는 경제적 시장을 형성한다. 규제를 산 수요자는 해당 시장에서 독점자가 되므로 그 밖의 사람에게는 진입이 금지된 셈이다. 이 같은 독점은 독점비용을 비싸게 만들므로 효율성을 저해한다.

셋째 조건은 정보의 투명성이다. 한 사회의 근간은 회계사와 법률가이다. 이들 시장이 폐쇄된 사회는 셋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다. 법률가 시장에 두터운 인위적 진입장벽이 있는 한 정보의 투명성은 기대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분식회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계사 시장을 자유롭게 개방하여 경쟁으로 유도하는 길이다. 단, 회계사 시장만 개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금융시장이 발달해야 한다. 분식회계는 정부의 법률로 막기가 쉽지 않다. 금융시장에서 정보의 완전경쟁이 허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넷째 조건의 예는 맥도날드 햄버거 식당을 생각하면 된다. 전세계적으로 햄버거는 동질화되어 간다. 맥도날도가 등장하기 전, 구멍가게 식으로 운영되던 햄버거 식당은 식당마다 햄버거가 각양각색이었다. 맥도날드 햄버거 맛에 실증 난 사람은 버거킹으로 가면 된다. 버거킹 역시 전세계적으로 자신의 상품을 통일 시켰다. 전에는 복덕방마다 서비스가 달랐다. 세계적인 부동산 회사가 상륙하면서 서비스가 통일되고 전통적인 복덕방은 사라질 운명이다. 동네 어귀에 있던 구멍가게도 앞으로 사라질 것이다. 동질의 서비스를 앞세운 편의점으로 대체될 것이다. 상품이 동질적으로 된다는 것은 가격이 싸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유통의 혁명은 상품을 동일하게 만들고 가격을 내리게 한다. 역시 효율성이 제고된다.

다섯 번째 조건이 눈에 띄는 분야 역시 금융부문이다. 돈이 이미 1원 이하의 단위까지 세분된 분야답게 이 분야의 발전은 눈부시다. 요즈음 새로 각광받는 리츠reits 상품은 적은 자금으로 살 수 없는 부동산을 사실상 세분하여 구매할 수 있는 제도이다. 뮤추얼 펀드는 이 방면의 고전적 형태다. 수익증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항공회사의 비행기는 쪼개서 팔 수 없지만 그 회사의 주식을 사면 쪼개서 사는 셈이 된다. 금융의 발달은 모든 상품을 세분시킬 수 있다. 적은 자금으로 모든 상품을 살 수 있으므로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효율을 증진시킨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콘도는 하나의 부동산을 여러 사람과 나누어 소유하므로 세분화의 효과가 있다. 각종의 리스lease회사는 이 분야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상품의 세분화는 자본주의의 단점인 소득분배를 금융시장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적은 돈으로 수익이 좋은 부동산이나 주식을 살 수 없었던 서민들을 세분화를 통해 이 시장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진입의 자유라는 둘째 조건도 달성하게 하면서 새로운 소득원천을 창출해주는 역할을 한다. 경쟁에서 소득이 노력이나 능력 보다 유산이나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나이트의 반어법을 넘어서 경쟁을 통해 소득분배가 제자리를 잡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세분화라는 조건의 실천에 달려 있다.

상품의 세분화는 위험의 배분 역할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자원의 배분에만 관심이 있었던 20세기 경제학은 사람들 사이에 위험의 배분이라는 분야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옵션과 선물시장의 발달은 이런 면에서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 사회가 위험에 방치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상품의 세분화이고 이를 통해 효율이 제고된다.

이상의 다섯 가지 조건은 1백년 전만 해도 결코 현실에서 달성될 수 없는 것들로 보였다. 그래서 경제학은 비현실적인 학문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케언즈J. E. Cairnes는 기계역학이 鐵路와 관련 있는 것에 비하면 경제학은 철도산업과 아무 관련도 없다고 냉소적으로 썼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경쟁의 의미를 이해한 경제학자도 별로 많지 않았다. 독점적 경쟁이나 불완전경쟁이라는 말도 1890년에는 없었다. 경쟁은 무자비한 삶의 경쟁으로 인식되는 정도였다.

경쟁을 최적의 가격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역시 20세기 초였다. 경쟁에 대한 이해는 역설적으로 193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카고대학과 하버드대학 사이에 벌어졌던 독점적 경쟁에 관한 첨예한 논쟁 덕분에 경제의 의미가 확실해지면서 이해도가 깊어졌다. 70년대에 이르러서 시카고대학의 주장에 가세하는 학자들이 많아지며 힘을 얻자, 현실에서 경쟁의 조건을 실현시키려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80년대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오늘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다섯 가지 조건을 실현하면 시장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은 不問可知이다. 자연히 정부의 역할은 축소된다. 정부역할 축소의 핵심은 정부의 재량권을 줄이는 것이다. 그 대신 정부도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개혁을 빌미로 정부의 재량권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외국의 법제를 모방한다고는 하지만 예외조항이 많고 핵심을 빠뜨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킵 비스쿠시W. Kip Viscusi 교수는, 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규제 개혁의 노력을 평가하는 글 〈Economic Foundations of the Current Regulatory Reform Efforts〉에서 한 가지 일관된 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부의 재량권을 줄이고 규칙에 따르도록 법제를 바꾼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벤스톤G. J. Benston과 카우프만G. G. Kaufman 교수 역시 91년의 예금자보험제도개선법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Improvement Act, FDICIA이 정부의 재량권을 줄이고 규칙을 늘인 것이라고 그들의 글 〈FDICIA After Five Years〉에서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스미스A. Smith 이래 경쟁이 현실에서 제 모습을 간신히 드러낸 것은 불과 10∼20년 전에 불과하다. 지금의 추세라면 경쟁의 정밀성은 앞으로 그 度를 더해 갈 것이다. 한국은 이 다섯 가지 조건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다. 그 실천력과 정밀성이 현재 세가 나아가는 방향이다. 여기에 윤리적인 판단이나 정의관이 개재될 일은 아니다. 더욱이 애국심이나 국민정서가 앞서서도 안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가부장적인 태도로 임해서는 안 된다.

김학은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중앙일보 에머지 2001.07 호에 게재된 글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