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퓰리즘’
2003-01-11
‘인터넷 포퓰리즘’ 올 한 해의 화두는 단연‘네티즌문화’일 듯 싶다. 네티즌혁명의 원년이라고 표현되는 작년에 이어 새해부터 네티즌의 정치 참여가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은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해였다.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 이에 힘입은 월드컵 4강 신화, 미선이와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으로 표출된 대미 감정과 자주 국가를 염원하는 촛불 행렬은 한 네티즌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짧은 글이 도화선이 되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행동하는 네티즌’들은 이번 대선에서 그 위력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네티즌들의 실존 자체를 부정하거나 그들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던 아날로그 세대들은 디지털 세대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심각한 문화적 괴리에 빠져 들었다. 이들은 네티즌들이 현실 세계로 뛰어드는 변화된 사이버문화를 이해하고 그 파괴력을 분석하는 데 인색했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장관 추천 등 네티즌의 참여정치에 관한 윤곽이 드러나면서 아직까지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날로그 세대들은 ‘인터넷 포퓰리즘’이라는 한국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또 한번 경악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인터넷 포퓰리즘’의 등장에 대해 민주화라는 긍정적 평가와‘인터넷의 익명성’, ‘무책임성’등으로 부작용을 빚을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우리의‘네티즌문화’가 앞으로 정치ㆍ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은 자명하다. 정부와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 ‘네티즌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존하는 지역ㆍ세대간의 정보화 격차를 줄여 다가올‘문화적 공황’을 최소화하는 지혜와 노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아날로그 세대들은 네티즌 문화의 실체를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아날로그세대의 오피니언 리더그룹은 머지않은 장래에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할지라도 당황하지 않고 이를 적극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심리적ㆍ기술적 준비가 요구된다. 실제로 일상의 상거래에서뿐만 아니라 인터넷 언론, 전자출판 등은 온라인의 오프라인 대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현재 운영되는 16개 사이버대학교를 포함한 e-러닝 분야 역시 온라인 교육이 궁극적으로는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대세는 아날로그 세대가 막을 수 있는 단순한 일회성의 사회적 흐름이 아니다. 둘째, 디지털 세대들은‘참다운’네티즌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얼굴을 감춘 채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 언어폭력, 사기, 허위 제보 등 인터넷의 역기능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한인터넷 기자의‘촛불시위 기사 자작’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이 여론 조작이나 대중 선동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이라는‘특권’은 작은 불씨 하나로 산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건기의 겨울산과 같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참다운’네티즌들은 행동 개시 이전에 제보의 사실성 확인과 검증을 필수로 생각하며, 더불어 반대 의견도 용납하는 아량을 갖춘 성숙된 문화를 정착시켜 네티즌 사회의 신뢰 구축과 투명성 확보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현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광대역통신(초고속통신망) 보급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투자 및 확산정책을 펴온 결과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정보 강대국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인터넷의‘핵심’으로 표현될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는 소홀히 해왔다는 지적이 많다. 그 결과 인터넷문화의 상대적 빈곤을 야기했다. 새 정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정보 인프라를 한껏 이용해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문화적인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하기 바란다. 풍부한 문화ㆍ예술 공간은 물론 네티즌들의 교양적 소양을 배양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정책의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 예로 평생교육 차원에서 유익한 교육 콘텐츠의 개발은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자기 계발 쪽으로 유도함으로써 건전하고 건설적인‘네티즌문화’를 정착시킬 것이다. 崔宣 (한양사이버대 경영정보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1.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