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이젠 자제를
	2003-01-03
촛불시위 이젠 자제를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는 31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에서 '100만 촛불 평화대행진'을 개최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위는 두 여중생이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도로변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 군사법정이 당시 장갑차를 타고 있던 두 미군 병사에 대해 무죄판결을 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사고는 어디서나 있는 법이다. 이 사고는 두 미군 병사가 강도나 강간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단순한 공무상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다. 사고 후 미군 지휘관은 여중생들의 부모들을 찾아가 사과하고, 1인당 1억9000만원씩 보상을 했다. 그리고 지휘관들은 문책을 당했다. 무죄판결 이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비록 주한 미국대사가 대신 읽은 것이긴 하지만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그런데 촛불시위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배상도 안하고, 사고를 낸 병사를 무죄 석방하고, 몰래 미국으로 도피시켰다'고 믿고 있다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초강대국 미국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조국 해방과 건국, 한국전쟁, 그리고 그 후에도 미국은 우리에게 특별한 우방이었다. 현재 김대중 대통령은 두번씩이나 미국의 구명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미국은 분명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나라다. 세계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세계화시대에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만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고립주의이다. 그래서 며칠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나서서 촛불시위의 자제를 간곡히 호소했다. 노 당선자의 자제 호소는 촛불시위의 전국적 열기에 비추어 시의적절했다. 사실 범대위가 요구하는 핵심 역시 정부의 문제해결 방안과 다를 바 없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고 그 운영방식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모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SOFA의 개정보다 시급한 것이 북한 핵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한반도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 죽은 두 학생은 물론이고 그 부모들도 성의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그리고 평등한 동반자적 한미관계를 원하는 것이지 주한미군 철수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시위 규모가 커지면서 일부 과격한 사람들이 '미군철수'를 끼워 넣고 있다. 촛불시위가 계속되자 뉴욕타임스 등 일부 미국 언론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론화하고 있다. 분단된 상황에서 특히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폐쇄적인 북한 군사정권이 변화하지 않는 한 주한미군 철수는 동북아시아의 힘의 불균형을 가져 올 것이고 결국 대한민국의 존립에 큰 위험을 가져 올 것이 뻔하다.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상호 대등한 한미관계를 바라는 국민의 순수한 충정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확인되었으며, 몇차례의 촛불시위로 대외적으로 충분히 각인됐다. 범대위나 정부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이제 유능한 협상자들을 테이블에 앉히는 일이다. 이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SOFA를 개정하고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일이다. 이미 양국 간 실무협의가 시작됐다. 더욱이 노 당선자가 책임을 지고 해결하겠다고 했으니 이를 지켜보는 것이 도리다. 具升會 (동국대 윤리문화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2. 12. 3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