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민법 돼야
	2002-12-28
생활밀착형 민법 돼야 1999년 2월에 시작, 이제까지 4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민법 개정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 작업의 결과가 국회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재산이나 가족관계와 같이 국민의 일상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민법이 종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다. 대학교수, 법관 등으로 구성된 법무부의 민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마련한 개정제안에는 새로운 내용이 여럿 포함돼 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성년이 되는 연령이 만 20세이던 것을 19세로 낮춘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법률에서는 19세가 되지 않은 사람을 청소년이라고 하여 보호하고 있다. 또 일본을 제외하고 다른 주요 국가에서는 성년을 18세로 낮춘 지 오래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을 검토해 보았지만, 우리의 경우 18세가 되는 때에는 대개 고등학교에 재학중이어서 그대로 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성년을 19세로 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현재 선거권을 가지게 되는 연령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도 미묘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른 예를 들면 보증제도도 근본적으로 바뀐다. 종전에는 섣불리 “내가 책임진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보증책임을 질 수 있어서 불필요한 다툼의 소지가 있었던 것을 서면으로 해야만 법적으로 효력이 있도록 한다든가, 또 기업의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를 보증하는 경우에 그 기간이나 채무의 종류를 무한정으로 정하여도 효력이 인정되던 것을 기간과 종류를 명확하게 정해야만 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그 외에 중요한 개정제안은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다. 지금까지 민법의 개정은 주로 친족법이나 상속법과 같은 가족에 관한 규정을 대상으로 했었다. 민법은 1958년 2월에 공포돼 1960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는데, 애초에 만들어진 민법은 남녀평등의 이념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나의 예로, 딸의 상속분은 아들의 2분의 1로 했던 것이다. 이 규정은 1979년부터 그 상속분을 남자와 동일한 것으로 개정됐다. 그렇지만 그 때에도 시집간 딸의 경우에는 오히려 아들의 4분의 1로 정했었다. 이것도 1991년 1월부터는 달라져서, 시집간 딸도 아들과 같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민법 중 가족에 관한 규정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대체로 그것은 개인의 존중과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착실하게 발전하여 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민법이 정하는 다른 하나는 재산관계이다. 어떤 재산을 소유하는 일, 물건을 사고 파는 일, 부동산을 전세내서 빌려 쓰는 일,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 주는 일, 사고를 당해서 손해를 배상받는 일과 같이 두루 행해지면서도 기본적인 사항과 관련한 법적 문제는 기본적으로 모두 민법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해결된다. 민법은 무서워 할 필요 없는 ‘조용한’ 존재로서, 일반 국민은 알게 모르게 그것이 정하는 틀에 맞추어 생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산관계에 대한 원칙적 규정을 담고 있는 민법이 시행 후 40여년이 지나는 동안 거의 손질을 받지 않은 채로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급한 필요가 있으면 금년 11월부터 시행된 상가임대차보호법과 같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대응해 오기는 했다. 그렇기는 해도 그 사이에 우리 사회가 겪은 급격하고도 광범위한 변화를 생각해 보면, 그 바탕을 이루는 민법의 재산관계 규정도 이를 전면적으로 다시 음미해서 개정하는 작업은 꼭 필요했던 일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는 나라의 기본틀에 해당하는 민법이 과연 일반 국민의 기업 활동과 경제 생활을 합리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초로서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검토해 볼 필요를 명확하게 의식하게 했다. 가장 중요한 담보 형태이면서도 민법에 단지 1개조를 두는 데 불과했던 근저당권에 대해 이번의 개정 작업에서 이를 13개조로 늘려 상세하게 정한 것도 그러한 필요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게 되는 것이 일반 국민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국민의 일상 생활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민법이 이제 40여년 만에 전면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당파적인 이해 관계를 떠나 공평한 입장에서 이를 신중하고도 내실있게 심의 처리함으로써 새 정부에 대한 온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양창수 (서울대 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12. 2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