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로에 선 '北核'
	2002-12-13
다시 기로에 선 '北核' 북한이 사실상 제네바 합의의 폐기를 선언했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중유공급을 중단하니 전력생산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표현했지만, 내용적으로는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이는 지난 9일 예멘에 수출하는 미사일을 실은 북한 상선을 미국 해군이 검색한 데 대한 대응인데,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현상유지적 자세와는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북한 핵문제는 다시 중대한 기로에 섰다. 남북관계도 시련을 맞고 있다. 경수로 공사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선박검색은 미국과 북한이 농축 문제를 놓고 대치하던 중에 터져나온 사건이었다. 이런 중에 북한은 미사일 수출이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문제로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미 군함들이 득실대는 걸프지역으로 미사일을 내다 팔고 있었다. 이에 미국은 미사일 확산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주기 위해 최초로 해상차단작전(MIO)을 필친 것이다. 이제 미·북대결은 농축에서 미사일로, 그리고 다시 플루토늄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어떤 대응을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평화적 해결, 현상고착, 위기조성 등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쉬운 선택이 없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버리고 타협한다는 것은 곧 변화를 수용하는 것인데, 개방과 민주화가 결국 북한정권의 존립을 위협하게 된다는 한계 때문에 여의치 않은 것 같다. 지금도 경제사정이 어려운 북한이 충격요법으로 미국과 국제사회에 맞선다는 것은 더욱 힘든 선택일 것이다.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당분간 적당한 수위로 맞서되 결정적인 적대행동은 자제하는 현상고착 자세를 취하면서 다음 수순을 고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제 ‘농축문제’ ‘선박검색’ ‘핵동결 해제선언’ 등으로 치고 받으면서 국면은 현상고착에서 벗어나 양극단 중 한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북한은 일단 대화에 나서야 한다. 현 사태는 내년 2월에 출범하는 새 정부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선은 미국과 북한에 대화를 설득해야 하겠지만, 진정한 남북공존을 위해서는 핵문제뿐 아니라 모든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대상으로 삼아야 함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사일, 화학무기, 생물무기 등을 그대로 갖고 있는 상황에서 핵문제 또는 핵문제의 일부인 농축문제만 쳐다보면서 일희일비하는 것은 일부를 떼어주고 모든 것을 얻어내려는 북한식 ‘의제 쪼깨기’나 ‘꼬리 자르기’ 전술에 말려드는 격이 되고 만다. 이런 접근은 건전하고 호혜적인 남북관계를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이 평화적 해결을 거부하고 국제사회와의 대결을 고집한다면 국제공조를 중심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음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강경하게 나가면 북한이 반발하여 더 노골적으로 핵을 개발할 것”이라는 논리를 제기했지만, 현 사태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북한은 남한이 최대한의 호의를 베푸는 동안 금강산댐 공사에 박차를 가했고, 북방한계선(NLL)을 분쟁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서해교전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뒷전에서 핵개발을 추진했다. 이런 행적들과 현재 최강국을 상대로 벌이는 대결을 종합할 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정책이 남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보다 큰 견제력을 가진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 사태는 북한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북한은 이것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계속해서 미사일을 확산시키고 대량살상무기로 주변국들을 인질로 삼아 국제사회를 협박한다면,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길은 영구히 봉쇄될 수 있다. 반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면서 체제보장과 지원을 희망한다면 모든 것을 얻어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것이 다시 기로에 선 핵문제를 현명하게 풀어 가는 길이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2. 12. 1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