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수능시험의 총점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내년도 대학 신입생의 약 3분의2를 선발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수능의 총점분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획일적 잣대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를 막아 보겠다는 충정 때문이라고 한다.
*** 修能총점 분포 공개 안해
그러나 교육의 이상과 입시의 현실이 만들어 내는 간격 사이에서 막상 가장 괴로운 집단은 입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들과 이들을 지도하고 뒷바라지해 온 고등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형들이다.
입시가 투기가 아니라면 예측 가능성의 확보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어느 정도 공부하면 어느 정도의 대학에 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 주는 척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부러 발표하지 않는 일이 과연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 교육개혁인가. 교육부 입장에서 입시는 그저 매년 있는 연례행사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입시를 치르는 본인과 가족에게는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삶의 중요한 고비다.
그런데 이 고비에 대한 대처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이끌어 가면서 과연 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획일적 잣대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 일은 대학에 학생 선발에 관한 모든 권한을 1백%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를 유지하면서 수능의 총점 분포만을 비밀에 부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누울 자리를 확인할 수 없는데 어디로 다리를 뻗으란 말인가.
누울 자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비단 입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추진한 거의 모든 교육에 관한 개혁이 이 문제로 국민을 헷갈리게 만들어 왔다. 한편으로는 정부의 장밋빛 공약과 다른 한편으로는 누적된 역사가 제약하고 있는 잿빛 현실이 교차되면서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예컨데 이제 더 이상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간다'는 공약(空約)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또한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면 나타날 것이라던 긍정적인 효과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다만 이를 다시 연장할 것이냐의 문제로 나라가 시끌벅적할 뿐이다.
'학급당 35명'이라는 탁상행정의 이상은 냉엄한 교육현실 앞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교육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보완책으로 내놓은 '자립형 사립고' 또한 정부의 집행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며 좌초했을 뿐이다.
국부 유출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조기유학 문제 또한 누울 자리를 찾지 못한 학부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아이들과 아내를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는 이제 멀기만 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40대 가장들의 모임이 있으면 어김없이 구체적인 사례가 화제로 등장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조기유학을 선택하는 가정의 궁극적인 기준은 결국 아이의 장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현실 때문이다.
*** 예측 가능성 확보가 중요
정권 차원에서 이제는 개혁의 공과를 평가하고 마무리를 할 시점이다. 교육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했던 개혁의 내용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만약 아니었다면 과연 그 까닭은 무엇인지를 하나 하나 정리하고 평가해 다음번 개혁의 기초자료로 삼아야 한다.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건 혹은 야당이 정권을 교체하건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개혁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질은 삶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성취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누울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특히 입시생은 이 문제에 민감하다. 일생에 딱 한번 주어지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누울자리 봐야 다리 뻗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수능시험의 총점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내년도 대학 신입생의 약 3분의2를 선발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수능의 총점분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획일적 잣대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를 막아 보겠다는 충정 때문이라고 한다.
*** 修能총점 분포 공개 안해
그러나 교육의 이상과 입시의 현실이 만들어 내는 간격 사이에서 막상 가장 괴로운 집단은 입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들과 이들을 지도하고 뒷바라지해 온 고등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형들이다.
입시가 투기가 아니라면 예측 가능성의 확보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어느 정도 공부하면 어느 정도의 대학에 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 주는 척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부러 발표하지 않는 일이 과연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 교육개혁인가. 교육부 입장에서 입시는 그저 매년 있는 연례행사의 하나일지 모르지만 입시를 치르는 본인과 가족에게는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는 삶의 중요한 고비다.
그런데 이 고비에 대한 대처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혼란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이끌어 가면서 과연 개혁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획일적 잣대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 일은 대학에 학생 선발에 관한 모든 권한을 1백%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를 유지하면서 수능의 총점 분포만을 비밀에 부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험생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누울 자리를 확인할 수 없는데 어디로 다리를 뻗으란 말인가.
누울 자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비단 입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추진한 거의 모든 교육에 관한 개혁이 이 문제로 국민을 헷갈리게 만들어 왔다. 한편으로는 정부의 장밋빛 공약과 다른 한편으로는 누적된 역사가 제약하고 있는 잿빛 현실이 교차되면서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예컨데 이제 더 이상 '무엇이든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간다'는 공약(空約)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 또한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면 나타날 것이라던 긍정적인 효과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다만 이를 다시 연장할 것이냐의 문제로 나라가 시끌벅적할 뿐이다.
'학급당 35명'이라는 탁상행정의 이상은 냉엄한 교육현실 앞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교육의 하향평준화에 대한 보완책으로 내놓은 '자립형 사립고' 또한 정부의 집행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며 좌초했을 뿐이다.
국부 유출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조기유학 문제 또한 누울 자리를 찾지 못한 학부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아이들과 아내를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은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는 이제 멀기만 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40대 가장들의 모임이 있으면 어김없이 구체적인 사례가 화제로 등장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조기유학을 선택하는 가정의 궁극적인 기준은 결국 아이의 장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현실 때문이다.
*** 예측 가능성 확보가 중요
정권 차원에서 이제는 개혁의 공과를 평가하고 마무리를 할 시점이다. 교육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했던 개혁의 내용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만약 아니었다면 과연 그 까닭은 무엇인지를 하나 하나 정리하고 평가해 다음번 개혁의 기초자료로 삼아야 한다.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건 혹은 야당이 정권을 교체하건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개혁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질은 삶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성취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누울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특히 입시생은 이 문제에 민감하다. 일생에 딱 한번 주어지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柳錫春(연세대 교수 ·사회학)
출처 - 중앙일보 '중앙시평' 2001. 12. 6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