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채무자 과잉 면책
	2002-11-01
우려되는 채무자 과잉 면책 어제의 조간·석간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문구는 ‘개인 채무 탕감해 준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신문 내용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는 이르면 2003년 7월 1일부터 도산법을 시행할 예정이고, 개인들이 5년 동안 성실히 자신의 빚을 갚으면 나머지 빚을 탕감하여 준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우선 ‘도산법’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는 느낌이 든다. 원래 ‘도산’의 사전적 의미는 재산을 다 써서 없애는 것을 말하고, 쉽게 표현하면 넘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산이라는 말 자체는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이고, 현재 정부가 발표한 도산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에 비추어보면, 법률의 이름을 ‘도산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개인 또는 회사는 경제 활동의 주체로서 다양한 사회 생활을 하게 되고, 통상적으로 직장을 다닌다든지 하여 수익을 얻고, 또한 카드 등의 사용으로 일정한 부채를 지게 된다. 보통은 수익의 한도 안에서 소비 생활을 하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생이란 변화무쌍한 것이므로 불가피한 사정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고, 과도한 소비 및 지출로 문제가 발생하고 개인 또는 회사는 자체적으로 이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을 경우가 있다. 만약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다면 국가에서는 특별한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 해당 개인 또는 회사가 개별적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많이 존재한다면 국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현재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매우 많으므로 국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법률을 가지고 있다. 도산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도산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산법의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과제는 도산 상태의 합리적 해결이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합리적 해결이란 도산 상태에 빠진 기업 또는 개인 중에서 재기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이에 도움을 주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재기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채무자의 재산을 정리하여 관련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것이 필수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이라는 3개의 법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정리법은 재기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하여 종전의 경영자를 배제하고 법원이 개입하여 회사를 살리는 절차였고, 화의법은 종전의 경영자를 배제하지는 않았으나 채권자와 합의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약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재기 가능성이 없는 회사 등이 회사 정리절차 및 화의제도를 악용하려는 것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아 채권자의 권리 구제에 미흡한 점이 있었고, 파산법과 관련하여 개인이 연대보증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채무를 진 사람에 대하여 평생 동안 그 책임을 물어 불행하게 살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므로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채무를 면제하여 줌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활동하게 하여 줄 필요성이 있다. 또한 회사정리 신청이나 화의 신청을 하여 왔다고 해도 법원이 심리한 결과 재기 가능성이 없다면 신속하게 파산 절차로 이행할 수 있어야만 도산 상태의 신속한 해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에서 마련한 통합 도산법 시안은 전체적으로 보아 도산 상태의 해소를 위한 3개의 법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절차적인 번잡함을 하나의 법으로 통합함으로써 이를 해결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만 하다. 나아가 지금까지 실무상 문제로 되었던 점들을 자체적인 해결 방법 또는 외국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하려고 상당한 기간 노력한 결과라는 점, 개인회생 제도와 관련하여 빚을 갚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5년간 성실히 빚을 갚은 건전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한 점 등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부의 도산법 시안은 앞으로 몇 가지 절차가 남아 있으므로 혹시 채무자에게 과도한 면책의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닌지 여부에 관하여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정영환 (고려대 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10. 3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