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질서 교란이 문제다
	2002-11-01
신용질서 교란이 문제다 정부가 마련한 통합도산법은 부실기업주나 개인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채무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면이 있어서 채무자가 고의로 이 제도를 악용하면 채권확보나 개인간의 계약은 정당하게 보호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 개인파산에 직면한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 등이 회생할 수 있도록 부채를 탕감해주고 파산을 면하게 해주는 제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런 제도는 선진국에서도 실시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이 도산할 경우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은 불가피하게 상황연장, 빚탕감, 이자감면, 등 채무구조조정을 해왔다. 이런 제도를 개인채무자에도 적용해서 빚을 어느 정도 갚을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필요하다. 어차피 이들을 구제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산에 직면한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도한 면책기회를 줄 경우 빚은 떼어먹고 안 갚아도 된다는 의식이 만연해질 우려가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이래저래 가계 빚이 크게 늘고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신용불량자를 양산해 왔다. 정부는 그때마다 선심쓰듯 신용불량자의 불량신용기록을 말소해 주어 왔다. 채무부담 자체를 경감해 주지는 않지만 신용불량기록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불이익은 면제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선심성 조치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오히려 더욱 키워 온 것 같다. 이달부터 시행되는 개인신용회복 지원제도도 문제해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같다. 일부 부도덕한 채무자들이 개인회생제도를 악용할 경우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개인회생제도의 성공여부는 무엇보다도 어떻게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방지하고 스스로 자신의 신용을 관리하도록 하느냐에 달렸다. 가령 채무자가 도박이나 낭비로 방만한 생활을 하거나 빚을 떼어먹기 위해서 고의로 채무상환 불능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이 제도가 악용됨으로써 오히려 채권자나 금융기관들은 대부를 기피해서 금융시장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개인회생제도는 파산한 채무자가 채무변제계획을 5년동안 이행하면 남은 빚은 탕감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채무자가 빚을 상당부분 떼어먹기 위해서 재산을 빼돌리고 고의로 파산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금융기관이나 채권자는 기본적으로 돈을 빌려주기 위해서 철저하게 채무자의 상환능력과 빚갚을 의지, 즉 신용도를 조사해야 한다. 우리 금융기관이 외환위기를 겪은 것도 이 같은 기업신용조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연체율이 높아지고 이것이 또다시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불안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허술한 개인회생제도까지 마련할 경우 가계부채 부실화가 금융기관 부실화를 촉진하고 금융위기를 재발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채권보호나 사적계약의 존중은 자본주의사회의 기본원리이다. 이것을 느슨하게 해서 채무자의 빚을 갚을 능력이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것은 금융시장 기능 및 신용사회의 근본을 훼손하는 것이다. 근래에 선심성, 온정주의가 만연해서 신용불량자에 대한 신용사면을 비롯한 각종 사면이 너무 헤프게 운용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선심성 조치가 채무자의 고통이나 신용불량자의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신용질서의 확립을 저해하고 금융시장 및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개인회생제도가 건전하게 운영될 수 있기 위해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제도적 장치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용사면보다 신용불량자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재웅 (성균관대 부총장.경제학) 출처 - 세계일보 2002. 11.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