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식 개발 이제 그만
	2002-10-31
불도저식 개발 이제 그만 강남 개발이 이루어진 지 30여년 동안 방치되고 소외되어 왔던 강북지역도 이제 재개발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심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최근 3개 ‘뉴타운’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등 강북 재개발을 100ｍ 달리기처럼 추진하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뉴타운이란 포장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 뉴타운이란 도시 외곽지역의 넓은 빈 땅을 새로이 개발해서 만드는 신도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강북지역 개발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기성 시가지의 재개발 내지 재정비이다. 이미 토지가 미세하게 분할되어 있고 필지마다 건물이 들어서 있는 기성 시가지를 재개발하는 것은 뉴타운 개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범지구의 재개발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강북 전체의 공간구조 재편에 대한 밑그림을 먼저 그려야 한다. 개별 재개발 사업들을 모두 모아 놓았을 때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플랜 없이 개별 사업 단위의 각개약진 방식으로 강북 재개발을 추진하면 자칫 ‘공공에 의한 계획적 난개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시범지구 중의 하나인 길음지역의 예를 들어보자. 길음지역이 재개발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미아 4거리에서 아리랑고개와 동소문로, 종암로 일대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길음지역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정릉·미아·월곡·돈암·종암지역도 각각 재개발될 것이고 나아가 수유·쌍문·방학·도봉지역도 재개발될 것이다. 그렇다면 길음지역의 재개발계획은 이 지역을 비롯한 서울의 동북부 일대가 모두 재개발되었을 때의 모습을 먼저 그려보고 나서 수립해야 마땅하다. 또한 도봉로에서 미아4거리를 거쳐 도심에 이르는 교통체계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 대책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시제품을 만들어 놓고 이를 다른 지역에 대량 복제하는 방식으로 강북 재개발을 추진할 수는 없다. 판박이형 공장제 대량생산 방식의 개발은 강남으로 족하다. 강북은 산지·구릉지가 많아 지형의 기복이 심하고, 대표적인 서민 주거지이자 다양한 계층이 혼재하여 살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강북 재개발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제품을 만들듯이 지역마다 고유한 특성을 살려 다양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세입자를 비롯한 서민 주거지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주민 특성에 따라 주택의 유형, 규모, 소유·임차형태 등을 다양화하여 적극적으로 계층 혼합(social mix)을 도모하여야 한다. 또한 재개발기간 동안 전세대란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순환재개발 거점을 확보하여 단계별로 주민들의 임시 거주지로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재개발은 자연스러운 도시성장·변화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서울이 존재하는 한 재개발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이에 따라 강북 재개발도 일과성이 아닌 항시적인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서울시장이 바뀌더라도 또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강북 재개발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 신뢰성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곡이나 뚝섬지구에서처럼 시장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이번 기회가 아니면’이라는 초조감에 서둘게 된다. 조감도에 그려진 재개발 이후의 모습보다는 그러한 모습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시민의 공감대 형성과 주민 합의의 절차와 방법이 중시될 때,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얽혀있는 강북 재개발은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 강남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기까지 20~30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상기한다면, 강북 재개발도 20~30년 후를 내다보는 안목과 여유를 갖고 진행해야 한다. 최막중 (한양대 도시계획학 교수) 출처 - 경향신문 2002. 10. 3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