鬪士型 언론인 필요한 때
	2002-10-04
鬪士型 언론인 필요한 때 우리나라의 국정감사는 특이하고도 중요한 뉴스원(源)이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들을 매일같이 고발해 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건들이 언론이 발굴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을 통해 알려진다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인을 감시해야 한다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생각할 때 아쉽기 짝이 없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치인들을 통해서나마 엄청난 사건들을 알 수 있어 그나마 안심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갖는 정치적 입장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그 사건들이 어느 정도 진실이며 확증이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미국의 경우 이런 사건들은 대부분 언론의 치밀하고 끈질긴 노력에 의해 밝혀진다.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그만큼 높고, 미국 정치의 부정부패 역시 언론 때문에 생기기 힘들다.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몰아낸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라. 이 사건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 알려지는 여러 사건에 비하면 너무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두 기자의 노력과 그들의 취재활동을 신문의 운명을 걸고 도와준 신문사 간부의 의지로 그 전모가 밝혀졌다. 이 사건은 미국정치의 중대한 전기점으로, 또 언론의 위상을 한껏 높여준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반면 최근 우리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은 대부분 야당선거본부에 도청장치를 하고 서류를 빼내어 간 워터게이트 사건의 초기 정황보다 크고 무겁다. 여러 사건 중에는 4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의 행방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는 이해 못할 사건도 있다. 이 사건의 진상이 야당의 폭로대로라면 국민들은 참담하기만 할 것이다.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넘도록 그 과정을 알지도 못했고, 아직 그 사실을 확인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을 찾은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는 “서울에는 퓰리처상감이 길거리에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며 놀란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사회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심도 깊은 보도나 해설은 절실하다. 언론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폭로한 사실 이상의 사실을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 기술을 동원해 캐내야 한다. 알아낸 사실은 어떤한 권력의 억압을 이기고라도 용감하게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 정부나 기업에는 아직 비밀이 너무 많다. 일반에게 공개해도 괜찮은 자료들을 ‘비밀’로 분류하고 있다. 훈련받은 기자들도 파고들 수 없게 해두고 있다. 좀 더 개방된 사회와 정부를 위해 많은 자료들을 공개하도록 법·제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사건들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언론은 아주 제한된 시간 내에 모든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사회도 처음부터 이렇듯 개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57년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을 제정하기까지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대한 저항은 엄청났다. 이제는 언론이나 일반이 정부업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상당부분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보자유법이 제정되고 활용되는 데는 언론인뿐 아니라 많은 사회단체의 강력한 추진도 있었다. 우리에게도 정보의 공개를 위한 법적인 근거가 있긴 하다. 그러나 법의 운용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적지 않다. 언론이 정치나 권력을 감시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기까지는 한계가 많은 것이다. 우리도 좀 더 밝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정보공개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미국에선 1970년대 초 탐사보도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언론인들이 마피아의 비행을 추적하다 희생된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언론은 취재를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 사례가 너무도 많다. 우리에게도 이런 투사형(鬪士型) 언론인들이 지금 필요하다. 법적이고 제도적인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좀 더 과감히 정치와 권력의 비리를 추적하는 기자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장원호 (아주대 미디어학부 석좌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2. 10. 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