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만 축내는 지방공기업
	2002-09-26
세금만 축내는 지방공기업 지방공기업들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재정의 자립도를 높이고 지방경제 발전의 주축이 되어야 할 공기업들이 거꾸로 세금을 먹는 블랙홀로 변한 것이다.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02개 지방공기업의 부채가 1년간 1조7600억원이나 증가, 8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총 손실액이 1조6000억원에 달해 빚으로 연명해야 하는 상태에 빠졌다. 이 중 서울지하철, 도시철도,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등 전국 지하철공사 4곳의 순손실이 8080억원에 이르러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의 경우 3년새 적자가 20배나 증가하여 409억원의 순손실액을 기록했다. 11개 지방도시개발공사는 부채가 1년간 1조75억원이나 증가, 총 2조3000억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들 개발공사는 빚을 얻어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까지 받고 있다. 지방공기업의 부실화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우리 나라 공기업은 정부의 하부 조직으로 정치논리나 관료주의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비용을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정상적인 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정치인이나 고위관리들의 낙하산 인사가 만연하여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공사경영이 방만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흔했다. 이에 따라 경영 내용이 불투명하고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지방공기업 역시 이러한 부실경영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영업손실과 부채의 급격한 증가가 이를 입증한다. 문제는 지방공기업의 부실화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자를 악화시켜 결국 국민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적자를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 2중고를 겪게 된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지방공기업들이 파산에 이를 경우 지방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등으로 정부의 부채가 400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중국 상품의 저가공세로 우리 나라 시장이 점령당한다는 것은 시간 문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고 지방경제 활성화를 유도하여 전방위적인 산업발전 체제를 갖춰야 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 지방공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할 경우 우리 경제는 또다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지방공기업의 부실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내부 구조개혁이다. 조직과 인원을 효율성 원칙에 입각해 재조정하고 서비스와 제품의 품질을 개선, 수익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경영진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인사 원칙에 따라 구성하고 성과가 좋지 않으면 물러나게 하는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뼈를 깎는 구조개혁과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도입 없이는 회생이 어렵다. 여기서 과거 부실 경영에 대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 파악은 새로운 변신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으로 지방공기업 경영의 정상화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민영화이다. 그렇게 되면 상업성에 입각, 수익 위주로 운영되면서 관료주의적 병폐가 사라지고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공공성이 결여돼 공사의 본래 기능이 위축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 공기업에서 흔히 포이즌 필(poison pill)을 삼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과 소비자에게 손해지만 당장 사업 구조조정이나 민영화를 포기시키기 위해 독약을 미리 삼킨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최근 한국전력과 5개 발전자회사가 지난해 4월 이후 각종 수당 인상을 통해 실질임금을 30%이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부의 임금인상 지침 6%의 5배를 웃도는 수치이다. 이러한 현상을 회사의 민영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포이즌 필로 민영화를 지연시킬 경우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전력의 소비자인 국민에게 넘어간다. 향후 지방공기업의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할 때 이런 도덕적 해이 현상은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 공기업 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구조개혁이나 민영화를 가로막는다면 이는 모두가 피해를 보는 최악의 반국민적 행위일 것이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9.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