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문화재`에도 신경을
	2002-09-16
`수해 문화재`에도 신경을 지난 90년 7월, 수령 600년 된 서울 통의동의 백송이 태풍에 허리가 부러져 넘어졌다. 이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효자동의 신목(神木)이었다. 효자동 주민들이 연명하여 대통령에게 백송을 살려내라는 청원서를 냈다. 이 때문에 청와대 행정수석실이 중심이 되고 서울시장과 문화재관리국장 등 관계 전문가들이 모여서 긴급 대책회의를 한 일이 있다. 효자동 주민들은 백송이 죽을까봐 밤마다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기도 했고, TV방송국에서는 이 사실을 뉴스로 방영하기도 했다. 태풍 ‘루사’가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갔다. 태풍 피해액이 5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이때까지 일어난 태풍 피해액 가운데 최고에 달한다. 그 가운데 문화재 피해액은 13일 현재 132건, 56억원으로 잠정집계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부산 금정산의 망루, 강릉 해운정과 선교장·망해정·경포대, 영동의 송담재, 부여 무량사 극락전, 남원 백장암 3층석탑, 남원 실상사, 여수 흥국사 대웅전, 경주 안압지의 임해전 등이다. 건물 지붕의 기와가 날아가고 일부 피해를 본 것들이다. 제주도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연 유산들의 피해도 컸다. 천지연의 난대림지대, 담팔수나무 자생지, 한란 자생지, 성읍의 팽나무, 구좌읍의 비자림 등이다. 또, 전남 신안군 초정리의 노거수, 완도 정도리의 구계등, 완도 예송리 상록수림, 함평 대동의 팽나무, 완도 맹선리의 상록수림, 고흥 금탑리 비자나무, 경남 하동의 송림 등이다. 일반 민가의 피해에 비하면 문화재 피해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집터를 잡을 때 사상적 체계와 과학적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을 따지고 10간 12지의 방위를 보고 산과 개천과 들과 조망을 따져서 문화재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 서유구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중 ‘상택지(相宅志)’ 등에는 이러한 택지 선정의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요즘은 건축을 하면서 이런 것을 검토하지 않고 대지만 있으면 평면만 보고 집을 짓거나 시설을 하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더 큰 재해를 당하곤 한다. 집을 지을 때 이런 상택론(相宅論)과 같은 조상들의 과학적 안목을 현대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의 태풍 피해와 관련, 그 긴급성과 복구 대책에 대해 정부에서 즉각 조치해야 할 일들이 있다. 문화재 피해가 다른 피해에 비해 규모가 작다고 하여 결코 소홀하게 다루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오래된 기와집의 경우, 비가 새게 되면 목부가 급속히 썩는다. 문화재 피해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배정된 예산에 따라 설계·계약하여 시공하는 절차를 밟으면 문화재 복구 대책으로서 미흡하다. 예비비의 긴급예산을 투입해야 하며 전문 기술자가 신속히 현장을 수습, 복구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문화재의 긴급 발굴이나 천재지변에 의해 파손된 복구비는 ‘문화재기금’ 제도를 도입, 충당하는 것이 예산도 절감하고 문화재 멸실을 방지하는 최선책이 될 수 있다. 태풍이나 홍수가 휩쓸고 간 산이나 들의 지표는 각 지역에 전문기관을 두어 긴급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1925년 대홍수 때 서울 풍납동 토성이 백제의 도성이었음을 증명하는 유물들이 발견됐던 예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 각지역에 이런 기능을 전담하는 전문기관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천연기념물 가운데서 이번 태풍에 부러진 식물이 있던 자리에는 그 나무를 꺾꽂이하여 대를 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천연기념물 피해는 국토의 난개발을 경고하는 의미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노거수가 수명이 다하여 속이 썩어서 태풍에 꺾이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백, 수천년을 이어오면서 그 터전 그 자리를 지키고 섰던 당산목이나 방풍림이 홍수에 떠내려간 것은 주위 환경이 인재로 인하여 악화된 탓은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천연기념물이 태풍에 피해를 보는 것은 고유한 우리 국토의 원래 모습이 훼손되는 것이며, 우리가 대대로 살아갈 이 땅의 삶의 근본 터전이 위협받는 것이다. 문화재의 태풍 피해는 예산의 긴급성과 전문 기술 및 학술의 긴급성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문화재 복구는 아무리 긴급하다 하더라도 전문 기술자의 참여 아래 이뤄져야 한다. 또한 비록 경미한 공사라 하더라도 날림으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본 문화재 복구를 전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9.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