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오래 남는 기사 많아야
	2002-08-19
가슴에 오래 남는 기사 많아야 시의적절한 '개혁 사각지대'기획 희망찬 NGO 소식… 지면 늘렸으면 '낙동강 수해 복구에 특단 대책을'(8월 17일자 사설). 지난 일주일 내내 필자는 이 사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주말인 17일에 어렵사리 올라온 이 글을 읽으며 나의 기다림은 실망의 다른 형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토록 혹심했던 수해에 관한 기사는 고작 침수지역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전한 세 건에 불과했다. 종합적인 피해상황이나 피해 확산의 원인, 그리고 근본적인 대책을 다룬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수해복구를 위한 특별 대책을 요구하는 이 사설에서조차도 수해현장의 참혹함을 TV 등을 통해서 봤다고 하니 신문의 '눈'은 이제 TV가 대신하게 된 것인가. 병풍(兵風)과 분당(分黨), 신당의 진흙탕이 저 넓은 시름의 물바다를 다 가려 버렸단 말인가. 시민의 삶 속으로 다가와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언론을 향한 갈증이 더욱 심해진, 비 내리는 한 주였다. 이러한 실망이 '언론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기사를 접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시론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16일자)는 "언론이 이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언론학자들은 다 뭐하고 있는 거예요"라는 핀잔을 듣고 있는 한 언론학 교수의 충언이다. 정치에 발목이 잡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보다는 정치적 편가르기에 휘말려버린 듯한 언론의 모습, 언론사 간의 거듭되는 반목과 갈등(17일자 김택환의 미디어 세상 '언론본업은 권력비판, 편가르기 할 때 아니다')은 모두 언론이 시민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증거임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언론이 시민의 참여와 자치를 항상 중심에 놓고 사고하지 않는 한 이 멀티미디어 시대에 주류 언론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갈증과 실망이 교차하는 마음을 추스르고 언론의 '희망'은 없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중앙일보가 꾸준히 지면을 할애해 온 NGO 관련 기사는 언론이 낙후한 정치의 그늘을 벗어나 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2일자 NGO면은 우리 젊은이들의 해외 자원봉사와 환경탐사 활동, NGO 소식 등을 다룸으로써 우리 주변에서 소리 없이, 그러나 줄기차게 커 올라오고 있는 희망의 나무들을 보여줬다. 앞으로 시민의 분노와 기쁨, 제안과 주장을 투명하게 알리고 이 사회가 시민의 합의와 협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지면을 더욱 넓혀주기 바라며 독자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자고 나면 신축공사 인천 학익동 주택가'(17일자)는 일상생활 속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제보한 시민이 기자와 함께 직접 현장을 점검하고 유관기관의 답변까지 얻어 기사화함으로써 시민과 함께 가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으로 사안에 따라 신뢰도 높은 시민단체와 함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파헤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 후련함은 곧 언론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다. '개혁 사각지대 정부산하단체'(14.16일자)는 연간 1백조원이 넘는 돈을 쓰면서도 복마전처럼 운영되고 있는 정부산하단체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파헤치고 합리적인 대책을 제시함으로써 시민을 위한 기사의 모범을 보여줬다. 특히 정부 산하단체의 개혁도 정치구조의 변화를 통한 국회와 시민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깊이 새길 만했다. 앞으로 중앙일보가 눈에 잘 띄는 기사보다는 가슴에 오래 남는 기사를 바탕으로 독자들의 아낌과 믿음을 받는 신문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林正根 (경희사이버대 사회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2. 8. 19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