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의 전제조건
	2002-08-02
주5일 근무제의 전제조건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노사정위원회의 노사합의가 끝내 무산되었다. 당초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IMF사태 이후 대량 해고의 위기하에서 1998년 노동계가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여 일자리를 마련하자는 소위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경제계도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근로시간 및 임금감소 방안에 동감하고 바람직한 도입방안을 노사합의로 도출하기 위해 논의에 참여했다. 임금인상 전략에 이용 그러나 고용사정이 호전됨에 따라 양대노총은 '고용유지를 위한 고통분담' 논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근로시간은 줄이되 임금은 줄여선 안된다는 소위 '삶의 질 향상'전략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결국 노사정이 모두 합의하고 공감한 제도도입 논의 초기의 목적과 문제인식은 사라지고 편법적인 임금인상 전략만이 남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계는 주5일 근무제가 우리 경제 여건상 시기상조이나 굳이 도입하려 한다면 기업 경쟁력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하며, 국제적 기준과 동떨어진 제도 도입은 곤란하다는 점을 누차 지적해왔다. 그렇다면 경제계가 주장하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주5일제를 도입하더라도 총휴일수는 최소한 일본의 휴일수(1백29~1백39일)를 초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8천9백달러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3만7천달러의 일본과 같은 수준의 휴일수를 수용하기는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휴일수는 91일(1년 근속)~1백1일(10년 근속)이다. 노사정위 안에 따르면 연월차 휴가를 통합해 근속연수에 따라 15~25일을 부여해도 총휴일수는 1백36~1백46일로 증가해 경쟁국은 물론 일본과 세계 최고 수준인 프랑스(1백45일)보다 많아지게 된다. 선진국의 평균은 연간 1백26.8일이다. 더욱이 생리휴가(12일)를 무급으로 존치할 경우 여자근로자의 휴일수는 1백48~1백58일로 증가한다. 또한 휴일수 계산에 포함되지 않고 있는 약정휴가 약 10일(창립기념일.하계휴가.경조휴가 등)을 포함할 경우 휴일수는 남자근로자 1백46~1백56일, 여자근로자 1백58~1백68일로 증가한다. 둘째,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주5일 근무제 도입시 폐지되는 생리휴가와 연월차 휴가의 임금보전을 금지하고, 잘못된 관행인 유급주휴제를 무급주휴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추후 노사간의 법해석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주5일 근무제 도입시 사용자가 약속한 임금보전의 범위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감소하는 4시간분 임금에 한정된다는 점을 법개정 내용에 반드시 명기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제도개선은 국제기준에 맞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현행 주6일 근로를 전제로 하고 있는 근로조건제도상의 과잉보호 규정들을 주5일 근무제 도입시에는 마땅히 국제기준에 맞춰 개선해야 할 것이다. 초과근로 할증률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인 25%로 조정하고, 탄력근로시간제를 국제 수준인 6개월 또는 1년으로 확대하며, 생리휴가를 국제기준에 따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성보호법 제정시 정부는 이미 생리휴가 폐지를 약속한 바 있다. 삶의 질.경쟁력 균형 필요 경제계의 주장은 우리 경제와 기업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막대한 추가 부담을 이겨내기 위한 최소한의 한계조건이며, 따라서 노동계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반영한 노사정위안 및 정부의 중재안 등은 합리적인 논의를 위한 적절한 대안이 되기 어렵다.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명분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보다는 현실에 기초한 합리적인 비용분담 원칙과 국제적인 기준을 감안해 노사정간의 합의와 국민적 컨센서스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근로시간의 제도개선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시점에서 2000년 10월 노사 기본합의문의 정신을 되살려 순수한 경제논리에 의거한 국제기준.관행을 토대로 근로자의 삶의 질과 기업의 경쟁력이 조화롭게 균형되는 방향으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孫炳斗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출처 - 중앙일보 2002. 8.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