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능력과 도덕성 사이
	2002-08-01
국정능력과 도덕성 사이 국정수행 능력과 도덕성을 동시에 겸비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 지도자로서 전자에 강한 사람도 있고 후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도덕성에서 심각한 결함을 노출했지만 국정수행에서는 정적(政敵)들도 감탄할 정도로 우수했다. 양자 모두 만족 어렵지만 그는 각종 개인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유 만만하게 재선에 성공했고 미국의 장기 호황을 이끌었다. 카터는 대조적 유형의 대통령이었다. 목사님 못지 않은 도덕성을 갖추었지만 국정수행에서는 실망스러웠다. 그의 재임시 미국 경제는 도탄에 빠졌고 국제적으로도 이란 인질사태 등 실패를 거듭했다. 국회 인준표결에서 부결된 장상(張裳)국무총리 지명자는 어떤 유형일까. 단언하긴 힘들지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張지명자를 선택했을 때 높은 국정수행 능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했다고 보긴 어렵다. 여러모로 볼 때 張지명자는 국정수행 능력보다는 도덕성에 강점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낙점을 받았을 것이다. 우선 그의 경력을 보자면, 큰 대학의 총장을 지냈고 몇몇 정부부처 자문위원을 역임했지만 정부 공직의 경험은 없다. 정치권에서의 활동도 없었다. 높은 국정능력을 기대할 수 있는 경력이 아니다. 교육계라고 비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은 아직까지 지성의 상아탑으로 존경받는다. 그런 대학, 특히 명문 사립대학의 총장을 지명했으니 도덕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더욱이 張지명자가 신학자라는 점, 그리고 부정부패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이라는 점도 金대통령이 도덕성을 중시해 선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국무총리의 역할은 구체적 정책안건 하나 하나의 결정보다는 다분히 상징적으로 내각을 대표하는 데에 있다. 더욱이 7개월도 채 남지 않은 현 정부의 총리로서는 의욕적으로 국정을 벌여봐야 실천하기 힘들다. 수많은 스캔들로 고조된 국민의 불신감을 줄일 수 있도록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 현 시점에서 총리가 할 일이다. 이러한 점들을 두루 볼 때도 張지명자의 선택이 국정능력보다는 도덕성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관련사안들에 집중되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주적(主敵)개념이나 햇볕정책 등 국정 현안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지명자의 도덕성이 주로 도마에 올랐다. 국적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위장 전입 여부, 학력 기재 시비 등 지명자의 도덕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논란거리가 불거졌다. 아울러 각종 문제에 대한 책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리는 모습도 논쟁 대상이 되었다. 국정수행 능력보다는 개인적 도덕성을 기준으로 하여 지명된 면이 큰 만큼, 도덕성이 인사청문회의 키워드였음은 당연하다. 도덕적 의혹을 명확히 씻을 수 없었던 張지명자의 인준부결도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것이다. 표결결과는 그렇다 치고, 과연 인사청문회가 도덕성 관련사안들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이끌었는지는 회의를 일으킨다. 그저 문제 제기에만 그치고 겉만 핥은 느낌이다. 인물검증 준비기간 늘려야 일방적으로 다그치는 의원들과 잘 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하는 지명자를 보며 국민은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의원들이 때로는 은근히 감싸거나 문제 핵심을 일부러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지명자에 대한 철저하고 공정한 검증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도덕성 관련사안에 대한 국민의 의식제고와 여론형성도 잘 이루어지기 힘든 수준이었다. 인사청문회가 이처럼 충실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표결이 부결로 나오니, 정말로 도덕성 검증이 잘 이루어진 결과인지 한편으로 찜찜한 마음이 든다. 다음번에는 찜찜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명자의 국정수행능력을 평가하든 도덕성을 살피든,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충실한 질의.응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사청문회를 운영해야 한다. 이 과제를 위해 청문회 준비 및 실시 기간의 확대가 필요하고, 급조된 특별위원회보다는 의결권을 갖는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이 당파적 계산에 의해 제약받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林成浩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출처 - 중앙일보 2002. 8.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