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高` 수출다변화로 극복하자
	2002-07-24
`원高` 수출다변화로 극복하자 최근 원화 가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현재 원화의 대미 환율은 1170원 수준이다. 지난 4월에는 1330원이었으니, 불과 3개월만에 160원이나 하락했다. 절상률로 따져보면 12%에 이른다. 그런데 달러화가 단기간에 다시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사건과 수익 감소로 인해, 뉴욕 월가의 주식시장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정부의 재정수지는 계속 악화되고 있고 경상수지 역시 사상 최대의 적자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경제와 달러화의 신뢰 회복에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원화 강세로 우리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그러나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있다. 원화 강세는 원유 등 수입 물가의 하락을 초래해 국내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 최근 경기 과열로 물가 안정이 우려되던 상황에서는 다행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은 외화 부채를 많이 축소했으나 아직도 많은 외화 부채가 남아 있다. 원화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원화표시 부채 규모가 크게 축소돼 이들 기관은 상당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원고(高)는 우리 수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연간 30억달러의 수출이 감소한다고 한다. 또한 개별기업의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된다. 무역협회는 우리 수출 기업의 손익분기점을 1150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내수 기업은 수입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덕을 본다. 부존 자원이 부족한 우리 경제의 성장 원동력은 수출이다. 내수에 의존한 성장은 한계가 있다. 수출 부진은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하고, 그동안 어렵게 회복한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다시 약화시킨다. 그러면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 자본이 이탈하고 증권시장이 약세로 돌아서, 실물경제의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사실, 97년 외환위기의 원인도 고평가된 원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원화 강세의 악영향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부심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 들어 수 차례에 걸쳐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개입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제 돼야 한다. 달러화의 약세가 대세인 상황에서, 섣부른 외환 시장 개입은 외환만 낭비하고 손실만 보게 된다.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고 외환 당국을 상대로 머니게임을 벌이는 환투기꾼들을 이길 수 없다. 1992년 파운드에 대한 환투기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무릎을 꿇게 했던 조지 소로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기업들이 환율변화에 따른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최고 품질의 상품을 개발하고 품질 개선에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환율 하락시 그 만큼 상품 가격을 인상하여 구매자에게 전가하면 된다. 그러나 이는 당장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품질 개선과 신제품 개발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결제통화를 달러 위주에서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 무역 당사국의 통화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법들은 모든 통화에 대해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에는 근본적인 해답이 못된다. 원고로 인해 수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것은, 원화 표시 상품 가격은 내리는 데 비해 임금 등 비용은 원화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원화 가치 상승에 비례하여 임금 등 원화 표시 비용이 동시에 하락한다면, 기업 수익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노동시장이 신축적이고 유연할 때에만 가능할 뿐, 우리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에 불과 몇년 사이에 대미 환율이 240엔에서 80엔대로 엔화 가치가 3배나 상승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수출은 줄지 않았고 실업의 발생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본 수출 상품의 대종이 고품질 제품이었기 때문에 가격 전가가 가능했다. 일본 기업들은 부단한 경영 혁신으로 원가를 절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 합의에 따라 임금의 절대 수준 자체를 하락시키는 등 유연하게 대처한 점이다. 이를 교훈 삼아 우리 노·사 관계도 투쟁 일변도의 관행에서 벗어나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7. 2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