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환경보다 소중한 것 | |
2002-07-22 | |
자연환경보다 소중한 것 우리 국민에게는 아직도 '경제'가 가장 큰 관심사이자 걱정거리다.그만큼 우리네 삶이 아직 풍요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물난리로 걱정이고, 반대로 갈수기에는 물이 없어 걱정이다. 묵살 당하는 전문가 의견 계절에 따른 물 조절이 절실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년 전 '동강댐 건설'을 아무런 대안 없이 백지화했다. 그리고 IT나 애니메이션 산업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서인지 굴뚝연기가 싫다며 산업구조를 환경친화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극심한 정체가 시민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 순간에도 '북한산 외곽순환도로' 건설문제는 아직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수만대의 차량이 북한산을 우회하는 외곽순환도로를 계속 이용하게 될 때 그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연료소비와 공해물질 등도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환경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보전 대 개발' 문제는 사실 더 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환경과 생태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경제발전은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설정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시민운동이라는 집단적 힘에 의해 전문가의 의견이나 법원칙이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지적하고 싶다. 전문가들은 이미 영월 동강사업이 환경이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다고 진단했고, 또 외곽순환도로가 북한산을 관통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도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대운동에 의해 한창 추진 중인 사업이 중단됐고, 또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모두의 염원인 선진국 진입을 위해 아직도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야 하는 처지에서 환경문제 때문에 어떠한 개발도 추진할 수 없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후대는 자연보존에만 집착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포기하려는데 기꺼이 동의할까? 경제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이전인 60년대의 절대빈곤 상태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지금의 물질문명에서 더 큰 혜택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우리 후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갖지 않을까. 다만 과거 단기간에 압축성장이 불가피했던 시절 환경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뤘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 자연친화적 개발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개발은 안된다' 또는 '해야 한다'의 양극단에서 한 걸음 비켜서서 환경보호와 관련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는지, 환경영향평가는 엄정하게 이뤄졌는지를 기준으로 개발 여부를 판단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 개발독재시절을 거치는 동안 언제부터인가 법과 원칙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이나 체제 거부행동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학생이 논술시험 답안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자연환경을 보전해 미래의 세대에 물려주자고 쓰고 있다. 또 선거 유세장에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환경을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후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대체로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데 지나친 가치를 두고 선악을 판단하려는 이분법적 경향이 강하다. 보전과 개발 조화 이뤄야 그들은 환경을 보전해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고 하면서 점심을 먹으려면(개발) 그만한 대가(환경파괴)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환경론자의 주장대로 한다면 우리 모두는 점심식사를 걸러야 한다는 말이 된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무슨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항상 선택과 조화의 문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보전이라는 한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그만큼 개발의 편익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록 가슴으로는 동강과 북한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고, 굴뚝연기가 없는 세상을 꿈꾸더라도 머리로는 물문제나 교통난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과 불편을 더불어 생각할 줄 아는 냉철함을 간직해야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자기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강변하면서 집단적으로 이를 관철하려는 움직임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때다. '환경과 성장'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우리의 풍요롭고 쾌적한 미래를 위한 동반자적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되고,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성숙한 사회를 열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월드컵 대회 기간 세계를 놀라게 한 시민의식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할 때다. 朴容晟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출처 - 중앙일보 2002. 7. 22 중앙시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