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로 가려면
	2002-07-22
‘네덜란드’로 가려면 유럽의 관문국가라면 단연 네덜란드가 손꼽힌다. 로테르담 항만과 스키폴 공항을 축으로 삼아 유럽의 물류와 비즈니스 중심지로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북해와 라인강이 맞닿는 곳에 위치한 로테르담은 유럽 물동량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항만도시이다. 한 해 취급하는 화물이 자그마치 3억t으로 부산항의 3배 수준이며 싱가포르에 비해서도 30%가 많다. 상공에서 바라본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부두를 낀 물류센터이다. 항만은 컨테이너, 석유화학, 철광석, 원목과 잡화 등으로 전문화돼 있고 항만 길이가 자그마치 46㎞에 달한다. 항만에 맞닿은 육로, 철도, 내륙 수운을 비롯한 운송망은 거미줄을 연상케 한다. 로테르담 항만 인근은 대단위 물류기지 및 물류센터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배에 싣거나 내릴 화물을 잠깐 보관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표부착, 포장, 조립가공, 판매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이처럼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물류센터는 고부가가치물류(VAL·Value Added Logistics)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가 물류는 물론이고 비즈니스 면에서도 유럽의 허브(Hub)기능을 맡는 배경이 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 진출해 있는 외국기업은 줄잡아 6700개 사(社)를 헤아린다. 특히 다국적기업들은 유럽의 지역총괄본부, 지역 물류센터 또는 콜센터를 설치할 때 네덜란드를 특히 선호한다. 미국·일본기업의 경우는 60%가 유럽지역 유통센터를 네덜란드에 두고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물류 및 비즈니스 센터로 이처럼 각광받는 것은 비단 물류 인프라 때문만은 아니다. 네덜란드 정부의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유연한 노동제도 및 네덜란드인들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비롯한 소프트웨어가 한몫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네덜란드가 처음부터 모든 조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물류와 비즈니스중심국화를 국가의 미래 생존전략으로 삼아 투자를 집중하고 제도개선을 일관되게 추진한 결과이다. 또 다른 유럽의 비즈니스 중심지로는 아일랜드가 있다. 인구는 400만명 남짓하지만 1인당 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아일랜드의 성공비결은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에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아일랜드의 노력은 정말 놀랍다. 정부의 투자유치 전담기관인 투자청에서 일하는 직원 개개인은 ‘움직이는 청사(one staff agency)’라고 불릴 정도의 권한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다른 부처에 직접적인 지시·협조가 가능하며 총리를 수시로 면담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IT(정보통신)·제약·의료 분야의 투자유치에 특히 주안을 두고 있다.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필요하다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놓으며 기존 투자업체의 추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사후관리는 기업의 마케팅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외국인 투자기업의 인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학교육 과정이나 훈련제도를 설립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아일랜드는 오늘날 유럽의 IT 중심국, 다국적기업의 투자천국이 됐다. 우리나라는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1200㎞ 이내에 7억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는 로테르담을 중심으로 같은 거리 내에 거주하는 인구 3억5000만명의 곱절이나 된다. 동북아의 물류·관광·비즈니스 중심지가 될 여건은 네덜란드에 비해 손색이 없으나 아직 우리는 이 같은 조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이 비즈니스 거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어 우리에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우리나라가 가진 지리·경제학적 이점과 기회를 살려 동북아 중심국가로서의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중심국가 전략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할 범국가 차원의 기획단이 필요하다. 아울러 하드웨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경제제도, 노동시장, 생활 및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언어소통 능력을 향상하는 등 소프트웨어 보강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네덜란드와 아일랜드의 사례는 잘 말해주고 있다. (金在哲/한국무역협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2. 7.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