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근무 전제조건
2002-07-16
주5일근무 전제조건 지난 4월부터 공무원들이 월 1회 주5일근무제를 시범 실시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은행이 토요휴무제에 돌입하는 등 우리 사회에 주5일근무 제가 도입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노사 양측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5일근무제가 도입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노사 당사자들이 전체적인 방향과 큰 틀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합의가 되지 않는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주5일근무제 논의가 진전이 안되고 있는 이유를 단순히 노사 양측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본다. 그보다는 아직 우리가 주5 일근무제를 수용할 준비태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주당 실질 근로시간은 53.5시간으로 법 정근로시간인 44시간을 훨씬 초과하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많은 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먼저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실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생산성 향상으로 근 로시간 단축분을 보전할 수 있다는 희망섞인 분석도 주5일근무제 도 입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 같은 발상은 중소 기업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업 현장 에 있는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다. 법정근로시간이 준다고 해서 기업의 실근로시간도 그에 따라 곧바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실근로시간이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업종의 특성상 연속작업을 요하는 교대제 근무형태 또는 연중무휴의 영업점포 등 산업 특성 때 문이다. 또 수출기업의 경우 트렌드 변화가 잦은 데다 물류비 절감을 위해 바 이어들이 과거와는 달리 다품종 소량주문을 내는 일이 잦고 납기도 촉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잔업 및 특근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실근로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기업의 초과임금 지급증가로 인건비 부담을 늘려 결국 경쟁력을 저하 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가 쉽다. 반면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작업 집 중도가 높아져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정 에 불과하다. 문제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기업 경쟁력 저하라는 현실 적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정근로시간이 단축되기만 하면 생산성도 올라가고 삶의 질도 개선 된다고 하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 믿고 주5일근무제를 충분한 합의 과정 없이 도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주5일근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연차휴가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휴일ㆍ휴가제도에 대한 개선 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되어 있던 개발 연대에 근로자보호를 위해 도입된 제도들은 그대로 두고 '노는 제도' 만을 국제기준으로 하자고 해서는 곤란하다. 둘째, 근로시간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최장 1 년까지 확대해야 한다. 2주 및 1월 단위로 되어 있는 현행 제도로는 계절적 수요변동이 큰 업종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하는 데 애 로가 많다. 셋째, 장시간 근로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잔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행 50%로 되어 있는 초과근로 임금할증률을 국제노동기구(ILO) 기 준인 25%로 하향 조정해야 한다. 넷째, 업종별ㆍ규모별 특성을 감안하여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높은 인건비 비중, 낮은 기술 수준 그리고 고질적인 인력 난 등 주5일근무제 도입시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충분한 유예기간이 필요하며 예정시기보다 앞서 주5일근무제 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조세 및 금융 등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확인한 우리 국민의 무한한 잠재력과 국민적 에너지를 산업발전에 접목하는 슬기가 요구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충분한 대비책 없이 주5일근무제가 도입될 경우 인력난 과 근로 분위기의 이완 현상 및 생산성 저하 등 총체적인 경쟁력 상 실로 인해 우리 산업계는 월드컵예선 탈락보다 훨씬 심각한 충격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 중소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인식이다. 백남홍 (대한상의 중소기업위원장) 출처 - 매일경제 2002. 7. 16 테마진단